탈북자 인권운동가 “美 대학 세뇌교육, 북한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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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인권운동가 “美 대학 세뇌교육, 북한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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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탈북 운동가 박연미씨가 영국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와 탈북 과정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프리덤팩토리 




콜럼비아대 박연미씨, 미국 향해

“억압과 불공정 토로하면서

자유 얻기가 얼마나 힘든진 몰라”




탈북자 출신 인권운동가로 명문 콜롬비아대에 재학 중인 박연미(27)씨가 “미국의 미래가 북한만큼 절망적”이라면서 미국 대학계에 만연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14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박씨는 북한과 미국의 공통점으로 반(反)서구적 정서, 집단적 죄의식, 숨막히는 정치적 올바름을 꼽았다.


박씨는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줄 알고 이 모든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는데, 그들은 내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라고 강요했다”면서 “이건 제 정신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북한에서 봤던 것과 무척 유사점이 많아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미국 대학에 도착하자마자 붉은 깃발(위험 신호라는 뜻이면서 공산당 깃발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을 봤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내가 고전 문학 중에서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니 대학 사람들은 나를 꾸짖었다”고 했다.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유럽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영국 소설가로,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이 대표작이다.


박씨는 “그러면서 그들은 ‘그 작가가 식민주의적 태도를 지닌 것을 알고 있었냐'면서 ‘그는 인종 차별적이고 편견만 가득해서 금방 널 세뇌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연미씨가 지난 10월 영국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와 탈북 과정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이후에도 점점 박씨는 미국 대학 수업들이 반미(反美) 프로파간다에 잠식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자라온 북한의 삶이 연상됐다고 했다. 북한에서 ‘미제 놈들'이라는 용어를 강요하듯 미국에서 ‘그(He)’나 ‘그녀(She)’ 대신 ‘그들(They)’이라는 성중립적 용어를 강요하는 것을 보며 “문명이 쇠퇴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고도 했다.


박씨는 “사람들은 뭔가를 보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완전히 잊어가고 있다”면서 “그게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는 인터넷도 없고, 위대한 사상가를 접할 수도 없으며, 아무 것도 모른다”며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세뇌하며 (미국이 가진) 그걸 부인한다”고 했다.


박씨는 미국인을 향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일개 북한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식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부숴 나가 공산주의 낙원을 재건하려는 것, 나는 이게 저들이 원하는 바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정말 미쳤다. 그러나 이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며 “이곳의 젊은 사람들은 줄곧 얼마나 억압받고 불공정을 겪어 왔는지 토로하지만, 그들은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나는 13살 때 굶주린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고 자유를 위해 고비 사막 한복판을 건넜지만, 그게 별 것 아니란 것을 안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힘들게 싸웠으면서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교수와 학생들과 수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국 박씨는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하기 위해서 어떻게 입을 닫아야 하는지 배웠다”고 했다.


박씨와 어머니는 박씨가 13살이던 2007년 탈북했다. 빙판으로 변한 압록강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 온 이들은 인신매매상에 잡혔다. 노예로 팔려가는 박씨의 몸값은 33만원(약 300달러)도 안 됐고, 어머니는 겨우 11만원(약 100달러)이었다.


모녀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몽골로 탈출했고, 고비 사막을 걸어서 횡단한 끝에 남한에 도착했다. 이러한 탈북 과정은 박씨가 지난 2015년 출간한 회고록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In Order to Live)에 담겼다.


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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