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1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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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21Years Later'

웹마스터

대니얼 김

제너럴 컨트랙터


9월 11일 아침, 뉴욕의 TV방송들은 21년 전 9.11테러가 발생한 세계무역센터빌딩 참사 관련 추모식을 중계했다. TV화면 하단부의 자막 타이틀이 ‘21Years Later’로 되어 있다.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사진과 함께 등장했다. 9·11 기념관 앞에 마련된 추모식장 단상에서는 희생자 가족, 친지 등의 입을 통해 수 천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불려졌다.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슬픔을 이기려는 출연자들의 얼굴이 처연하게 비쳐졌다. 기념 조형물 대리석 분수대 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줄기 굉음도 그 날따라 숙연했다. 화면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희생자 이름이 얼굴 사진과 함께 알파벳 순으로 연이어 등장했다.


당시 구조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경찰관들도 TV화면에 나왔다. 2년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대참사 이후 새로 지어진 빌딩과 그 앞에 땅을 파고 만들어진 기념관 조형물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조형물 주변에는 방문객들이 놓고 간 꽃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9·11테러를 두고 "현대사에서 미국인의 삶을 바꾼 가장 큰 전환점 중의 하나”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 일도 21년의 세월이 지나자 때로는 잊고 지내기도 한다. 추모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공교롭게도 ‘21Years Later’라는 타이틀처럼 최근 필자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21년만에 이민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결심 후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더니 “역이민이냐, 영구이주냐?”하면서 아쉬움을 전해왔다. 그럴 때마다 "하룻밤이면 서울과 LA를 오가는 시대에 무슨 영구귀국이냐"고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특히 두 딸 중 큰딸은 서울에, 작은 딸은 LA에서 살고 있는 까닭에 필자로서는 잠시 다니러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쨌거나 이같은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그간 아내의 요청이 여러 차례 있었다. 평상시 직장과 가정을 오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내게, 어느 곳이든지 살아가는 것(혹은 살아지는 것)이 동일하다며 굳이 다시 서울로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간, 95세 장모님이나 자매들과 이웃해 지내고 싶어하는 아내의 희망을 여러 차례 미루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거절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서울로 이사할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미국에 이민온 후, 21년 전 뉴욕 대참사도 보도를 통해서 지켜보았고, 2008년 경기침체, 2020년부터 현재까지는 코로나, 오미크론 등 각종 변이 바이러스 감염사태를 보고 겪기도 했다. 이런저런 세월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온다.


이사 일정을 정하고 항공권 e-티켓을 받아들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일은 그간 지니고 있던 각종 가구, 침대, 냉장고 등 세간살림을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었다. 꼭 가져가고 싶은 물품은 십여 개의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냈다. 버리고, 나눠주고, 떠날 연습을 하고 나니 '이사도 별 것 아니구만' 하는 마음도 든다. 그간 무척이나 불필요한 짐들이 많았네 하는 것도 터득하게 됐다. 항공기 탑승용 대형 트렁크 너댓 개면 족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고나 할까. 짐을 가볍게 하고 비워내는 작업을 통해 '살아가는데는 그리 많은 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가고 싶을 때, 혹은 어디든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을 때 좀 더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몇 군데 구독·구매하던 곳의 어카운트도 클로징을 했다. 아침마다 방문하던 커피하우스, 매주 찾아가던 영화관 멤버십, 짐(Gym) 회원권 등을 종결했다. 동네 도서관에 빌린 책도 반납했다. 20여년 전 한국을 떠나 오던 날, 다니던 직장의 CEO께서 내게 말했다. "대성(大成)하세요"라고. 돌아보면 어려움도 있었고 대성하지는 못했어도 나름 무탈하고 가족, 이웃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도 든다.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이 다시금 느껴진다. 더불어 복수국적도 신청했다. 두 개의 조국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50년은 한국에서 20년은 미국에서 참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앞으로도 두 개의 조국을 위한 관심과 기도 그리고, 이에 따른 필요한 실천이 남았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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