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단속국 전화 한통에 9년 모은 돈 모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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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단속국 전화 한통에 9년 모은 돈 모두 날렸다

웹마스터

일러스트 이은현


유타주 한인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마약 범죄 연루돼 체포 영장” 엄포

내 집 마련 자금 4만5000달러 홀랑

“법적 절차에 취약한 이민자가 표적”



영주권 신분의 한인 여성이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4만5000달러를 날렸다. 연방수사국(FBI) 솔트레이크 지부는 유타주 프로보시에 거주하는 사샤 강(Sasha Gang)씨의 사례를 통해 이민자들을 노리는 사기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했다.


지역 매체 UNIVION SALT LAKE CITY와 KSL.com 등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전화 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 아마도 지긋지긋한 스팸이겠지. 며칠 뒤에 또 그 번호다. 역시 안 받았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통 광고 전화는 한 두 번 저러다가 말텐데….’ 설거지를 마치고 구글에 검색해봤다. 그 번호는 이민세관단속국 전화로 뜬다. (발신번호 조작 프로그램이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자신을 ICE 요원이라고 소개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몇 가지를 확인했다. 그녀의 결혼 전 이름, 미국 입국 날짜, 가족수, 출신국가 등 세세한 내용들이다.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이윽고 (사칭한) ICE 요원은 강씨가 위조 여권으로 미국에 입국했으며 돈세탁과 마약 조직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은 이미 FBI와 IRS에 넘겨졌으며, 곧 체포 영장이 발부될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당연히 강씨는 펄쩍 뛰었다. “미국에 온 지 14년이다.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지냈다. 말도 안되는 오해다.” 그러자 상대는 “그렇다면 누군가 신분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이 혐의를 뒤집어쓸 지 모른다. 그럼 남편과 미국 시부모, 한국에 있는 친정 부모까지 곤란해질 것”이라고 압박했다. 게다가 “최소한 당신은 추방되고, 5살 딸은 위탁 보호소로 보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자신에게 발부됐다는 체포 영장도 이메일로 받았다. 멀쩡히 정부 로고가 새겨진 진짜 문서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조사에 동의하자 이번에는 FBI 발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돈세탁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정부 계좌에 돈을 이체하라”는 지시였다. 확인이 되면 정부에서 발행한 체크로 반환해주겠다는 얘기였다.


1차로 4만5000달러를 송금한 뒤 곧바로 3만달러를 더 보내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직장에 있던 남편이 은행 계좌의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어카운트를 동결시킨 뒤 911에 신고해 아내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의뢰했다.


출동한 경찰이 강씨의 차량을 발견하고 정지 명령을 내리자, 강씨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FBI 요원인줄 알고 겁에 질렸다. 하지만 사기 피해를 당한 것 같다는 경찰의 말에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부부는 거래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뒤늦게 송금 취소와 환불을 요청했지만 3주가 지난 지금까지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 사샤 강씨는 “정부 기관이 전화로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당하면 그렇지 않다”며 “발신 번호가 모두 정부기관으로 돼 있었고. 내가 무슨 큰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섰다. 의심을 하면서도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날린 돈은 내 집 마련을 위해 결혼 9년동안 꼬박 모은 금액”이라고 밝혔다.


강씨는 또 “만약 내가 미국에서 성장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지 모른다”며 “하지만 이민자였기 때문에 이전에도 많은 법적인 절차나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더 이런 구조에 취약한 것 같다. 아마도 나 같은 이민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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