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뒤집기, 버티기, 바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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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뒤집기, 버티기, 바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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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오장원에 최후의 진을 치고 사마중달의 공격을 유인하는 제갈공명은 군량미 조달을 위해 둔전(屯田)을 하면서 장기전의 버티기에 들어간다. 공명의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마중달 역시 꿈쩍도 않고 마냥 버티기만 한다. 양쪽의 버티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공명이 죽고 그의 군대가 철수하자 중달은 그제야 추격전에 나선다. 바로 그때, 공명의 뒤집기가 신통술을 부린다. 죽은 공명의 나무인형이 수레를 타고 나타나자, 공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한 중달은 혼비백산해 도망친다(死孔明能走生仲達). 


버티기와 뒤집기는 전쟁만이 아니라 씨름판에서도 정치판에서도 매우 쓸모 있는 싸움기술이다. 대한민국 정치사는 뒤집기 달인들의 기막힌 재주로 비참하게 뒤틀려왔다. 반세기도 넘게 지속된 ‘역사 뒤집기’ 작업이다. 감격의 건국사는 친일·반민족의 흑역사로 뒤집히고, 뜬금없는 광우병 촛불시위는 대통령의 ‘아침이슬’ 탄식을 끌어내며 국정동력을 뒤집었다. 실체 없는 이념으로 대중의 눈을 홀리며 권력의 길목을 차지하는 ‘정권 뒤집기’ 수법도 꽤나 집요했다. 


증거인멸을 ‘증거보전’으로 뒤집더니, 성추행 피해여성은 ‘피해호소인’으로, 정권실세의 문서위조 의혹은 ‘탈탈 털린 한 가정의 불행’으로, 건국 이래 최대 비리라는 대장동 개발의혹은 ‘단군 이래 최대 치적’으로 뒤집었다. 비밀의 베일에 덮인 수백만 달러 수수 의혹, 고위공직자의 난잡한 성희롱 추문… 그 어둠을 안고 무덤 속으로 사라진 인물들을 정치적 우상으로 부활시켜 신성한 아우라를 둘러치는 ‘사건 뒤집기’ 솜씨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대중의 분노를 업고 정권을 뒤집어 기득권층을 몰아낸 세력은 곧이어 또 다른 기득권층으로 전락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성공한 볼셰비키는 스탈린 시대에 새로운 특권계급 노멘클라투라로 변신했고, 소련 붕괴 후에는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로 나타났다. “좌파는 분노로 폭력시위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남는 것은 분노뿐이다.” 좌파의 선동정치를 비판하는 좌파의 이단아 슬라보예 지젝의 꾸지람이다. 


물론 뒤집기도 종종 실패한다. 세월호 침몰은 선박의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과적, 평형수의 부족, 급격한 방향전환 등 복합적인 내부 원인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인데, 이것을 외부 원인 탓으로 뒤집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음모론이 기어이 특별조사위를 만들어냈다. 3년 6개월 동안 세금을 572억 원이나 쓴 조사위는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외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아리송한 결론을 냈다. 뒤집지 못한 아쉬움이 진득 배어난다. 


뒤집히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버티는 쪽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다. 멍청스런 버티기는 끈질긴 뒤집기의 적수가 못 된다. 올바른 자리에 바로서지 않는 한, 뒤집기는 물론 버티기도 나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것이 타락한 이념의 패거리 정치다. 보수가 보수의 이름을 더럽히고, 진보가 진보의 가치를 조롱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 아닌가? 


전술의 귀재인 공명과 중달도 버티기나 뒤집기로는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뒤집기도 버티기도 궁극의 해결책은 아니다. 뒤집기와 버티기로는 썩어빠진 구태정치를 바로잡지 못한다. 거짓을 몰아낸 진실의 바른 자리, 위선을 걷어낸 윤리의 밝은 터에 바로 서야만 일그러진 정치판을 바로세울 수 있다. 그 막중한 일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저들을 올바른 자리에 바로 서게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주권자의 냉철하고 엄정한 심판만이 뒤집기와 버티기의 헛수고를 끝장내고 정치를 바로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심각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퇴임 때의 지지율이 5년 전 선거 때의 득표율과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극단적인 갈라치기로 내전에 가까운 대결구도 구축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편 가르기로 갈라진 유권자들이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선동꾼들을 어찌 심판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보다 국민이 먼저 바로서야 한다. 진실과 윤리의 바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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