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실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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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실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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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쉐어USA 대표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당혹해 하시던 그 아주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네가 어쩐 일이고?”를 연발하시며 “너는 교회 다니잖아?”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에 내가 더 놀랐었다. 몇 번이고 용서를 빌며 어머님께 비밀로 해 달라고 간청을 드렸고 그해 기나긴 겨울을 제 발 저린 도둑의 맘으로 가슴 졸이며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겨울이었다. 밤마다 동급생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여서 놀았다. 밤마다 한 사람씩 과자를 준비했다. 밤마다 과자를 먹는 것은 좋았으나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과자를 준비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용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먹을 과자값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과자 준비가 어려운 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한 친구가 동네 '점빵' 아주머니와 특별한 계약을 맺었다. 그 특별한 계약이란 돈이 없는 친구들이 쌀을 한 되 갖다 주면 과자를 주시기로 한 것이다. 순서가 되면 아이들은 어머니 몰래 집에서 쌀을 한 되씩 아주머니에게 갖다 주고 과자를 받아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사랑방 과자는 풍성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어머니 몰래 쌀 한 되를 비닐봉투에 넣어 아주머니께로 갔다. 아주머니께 봉투를 내밀며 “아주머니! 쌀입니다. 우리들 과자값이에요. 저녁 먹고 과자를 가지러 올게요!”하는데 그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네가 어쩐 일이고?”를 연발하시더니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보태셨다. “너는 교회 다니잖아? 집사님 아들이잖아?” 

   

별 죄책감 없이 쌀을 훔쳐 갔던 나는 당황하는 아주머니 때문에 더 당황했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가물가물한데 그 싸늘한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실망감과 당혹감 가득한 아주머니 얼굴에는 ‘교회 다니는 네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네가 이러면 안 되잖아?’ 하는 엄한 책망이 담긴 듯했다. 

   

당황하신 아주머니 얼굴보고 많이 당황했다 아주머니께 몇 번이고 용서를 빌었다. 마음이 불편해 저녁 때 어머님께 이실직고했다. 어머니께서 흔쾌히 용서해 주셨다. 사랑방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고 약속대로 사랑방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당시 아버님은 가난한 고향교회 강단을 지키셨다. 온 동네 사람들은 아버님을 ‘교회 집사님’이라고 불렀다. 교회관리를 하고, 예배당 종을 치시고 설교를 하시던 아버님을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교회 집사님 아들의 일탈에 점빵 아주머니는 크게 실망하셨던 것이다. 

   

훗날 그 아주머니는 교회 출석을 하고 고향 교회 집사님이 되셨다. 고향을 방문하면 ‘목사님 되실 줄 알았다’며 반갑게 맞아 주시곤 했다. 그 집사님을 뵐 때마다 맘 속으로 ‘그때 실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되뇌었다. 실망해 주셔서 정신 차리게 된 것을 감사한 것이다.  

   

얼마 전 존경하는 목사님과 아쉬운 일들을 나눴다! 요컨대 피차 실망했음을 나눈 것이다. 실망하신 것은 죄송하고, 실망한 것은 아팠지만 피차 기대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부족함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실망하니 또 “실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되뇐다. 실망을 넘어 기대에 부응하는 성숙한 행복을 누릴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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