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 반도체 전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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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경제포커스] 반도체 전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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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글로벌 공급망을 가지고 있다. 원천기술이 있는 미국이 주로 설계를 맡고, 대만과 한국이 최종적으로 생산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론의 경우, 미국 본토에 연구개발 시설을 두고 생산기지는 대만, 싱가포르, 일본에 가지고 있는 식이다. 일단 기술 측면에서 미국이 앞서 있는 것은 물론이다. 컴퓨터와 서버의 핵심인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은 인텔이,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애플과 퀄컴이 주도한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소프트웨어도 미국 제품이 표준이다. 


하지만 정작 생산은 거의 동아시아에서 한다. 미국의 생산 비중은 겨우 12%, 동아시아는 75%를 차지한다. 미국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도체는 단순한 전자 부품이 아니다.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기도 하다. 미국이 겨냥하는 것은 중국일 것이다. 동아시아는 중국에 너무 가깝다. 중국 본토와 대만은 해상 170㎞ 거리에 불과하다. 공급망의 안정성을 우려하는 미국은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합병과 인수 금지, 반도체 생산설비 수출금지 등으로 제재를 강화해왔다. 


중국 정부의 당초 목표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인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제재로 기술 도입을 통한 빠른 산업육성은 어려워졌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0년 말 현재 15.9%로 정체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바라는 대로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이 곧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의 55%는 수출품의 부품으로 들어간다. 중국의 반도체 부족은 자칫 미국의 공산품 부족으로 이어진다. 미국이 완벽히 중국의 반도체 공급을 끊을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기업은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다. 위탁생산을 의미하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4%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다. 덕분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슬에서 대만은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TSMC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산업육성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향후 3년간 미국에서 100억 달러를 투자해 5개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화웨이와는 이미 작년에 거래를 끊었다. 


그러나 TSMC와 한국 업계의 사정은 다르다. TSMC의 지역별 매출 구조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67%를 차지하고, 중국은 6%에 불과하다. 반면에 삼성전자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은 41%,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다. SK하이닉스는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서 50%에 가깝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정책에 부응하기도 해야 한다. 그게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늦어지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적어도 당분간 제조 역량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추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나치게 메모리에만 집중된 구조는 아쉽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4%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작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메모리 시장이다. 세계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는 27%,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는 73%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전체 무역 규모는 1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 반도체는 세계무역에서 원유와 자동차 및 부품, 정제 석유 다음인 4위 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 나가야 한다. 삼성전자는 약점인 시스템 반도체에 앞으로 10년간 171조 원을 쏟아붓는다. 미국의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20조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TSMC는 3년간 110조 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0조 원을 주고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펼쳐지고 있는 경쟁은 기업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경쟁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부터 10년간 중국 정부는 한국 돈으로 약 170조 원을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 규모도 60조 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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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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