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세상은 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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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세상은 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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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는 푸줏간집 아들(백정의 아들)이었는데 옆집 꽃신집 딸을 흠모했다. 꽃신집 딸과 학교를 같이 다니고, 간간이 같이 놀기도 했지만 늘 범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흠모하였고, 마음 속 깊이 사랑하였다. 상도의 마음을 아는지 상도 아버지도 꽃신집 딸이 고기를 사러 오면 반가이 맞아 주고,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주었다.

   

상도는 여러 가지로 꽃신집을 부러워했다. 손님이 많고, 부자인 것도 부러웠다. 꽃신을 파는 집은 부자이기도 했지만 신분상으로도 고기 파는 천민 백정과는 전혀 다른 신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옆집 꽃신 주인은 상도네와는 거의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도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꽃신집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고무신이 등장하자 꽃신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꽃신을 찾는 손님들이 끊어져 꽃신집은 점점 어려워졌다. 옛날에 꽃신집에 손님이 끊일 새 없었고 지역 유지로 살았지만 이젠 세상이 변했다.

   

상도는 꽃신집 딸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상도는 꽃신집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청혼을 했다. 상도나 상도 어머니는 혼사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꽃신집 주인은 상도가 모욕감을 느낄 만큼 냉정하게 거절했다.

   

꽃신집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짚단을 사지 못해 몇 해 째 지붕의 이엉을 갈지 못했다. 급기야 딸을 남의 집 부엌아이(식모)로 보냈다. 푸줏간에서 꽃신을 만드는데 필요한 쇠가죽을 외상으로 구매하였다. 반면 푸줏간은 점점 더 좋아졌다. 6·25 전쟁 통에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두 집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래도 꽃신장이의 도도함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변화를 거부하는 무지함이 상황을 더 어렵게 했다.

   

6·25 전쟁 통에 상도는 부산시장에서 꽃신 몇 켤레를 펴고 팔고 있는 꽃신 집의 주인 아내를 만났다. 안부를 묻는 상도에게 꽃신집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과 딸의 죽음을 알렸다. 상도는 큰돈을 주고 신발 전부를 샀다. 그러자 그 돈으로 남편 장례를 치를 수 있겠다고 했다.

   

재미작가요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했던 김용익의 꽃신이라는 소설의 줄거리다. 김용익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과를 마치고 한국에서 통역관과 강사로 활동하다 도미하여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꽃신(The Wedding)’으로 등단했다.

   

‘꽃신’은 변화를 따르지 못해 망하는 삶을 웅변한다. 근래 검찰제도를 둘러싼 갈등에서 국회, 검찰총장 그리고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뻔히 보이는 얕은 수로 벌인 탈당 촌극은 안쓰럽다. 온갖 변명으로 버티는 장관 지명자의 고집도 걱정스럽다. 국민의 의식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적절한 변화가 행복의 실마리다.

   

꽃신이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상도는 꽃신을 다 사주어 꽃신집 주인의 장례식을 치르게 함으로 마지막 사랑을 했다. 꽃신집의 비극은 이런 지고지순한 푸줏간집 아들 상도의 사랑을 쉽게 생각한 것이다. 대중과 지지자의 사랑을 쉽게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이런 비극이 어디 한국의 정치권뿐이겠는가? 지지자와 추종자와 대중의 사랑을 귀히 여기는 것이 더 큰 행복을 누리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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