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나쁜 놈, 덜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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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나쁜 놈, 덜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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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후보들의 정치적 지향성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원칙에 충실한가, 유사(類似)민주주의와 계획경제로의 변혁을 꾀하는가? 뒤엣것이라면 선거가 아니라 헌법체제의 파괴다. 후보들마다 ‘공돈 퍼주기’ 경쟁에 나섰지만, 우리 헌법의 복지는 배급제가 아니다. 선거 때 나랏돈을 마구 뿌려대는 매표행위가 진정한 복지일 수 없다. 삶의 그늘진 자리를 찾아 꾸준히 돌봄과 보살핌의 손길을 펴는 것이 올바른 복지정책이다. 


“중산층을 세금과 인플레이션의 두 맷돌 사이에서 으깨버려라. 부자들의 재산을 세금으로 빼앗고, 빈민들이 제 힘으로는 계층상승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라. 그들이 부자를 증오하고, 정부의 구호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도록 조종하라.” 레닌의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수정자본주의자 케인즈가 레닌의 모스크바 성명과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빈민들을 위한 평등과 복지를 앞세운 듯하지만, 실은 공산독재의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다.


후보들의 인품과 자질도 중요한 점검사항이다. 평소의 언행, 살아온 발자취, 쌓아온 실적, 가족들의 삶의 모습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말 많은 달변가는 위선자나 거짓말쟁이일 개연성이 높다. 도덕경은 “선한 이는 말이 없고, 말 많은 자는 선하지 않다(善者不辯 辯者不善)”고 가르친다. 히틀러처럼 현란한 말쟁이들이 선거 승리 후에 독재의 악마로 변신했다.


우리 정치판에서 진영논리는 당파싸움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이번 선거를 아예 ‘진영싸움’이라고 못 박았다지만, 진영싸움에 휘말리는 투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다. 이 반역에 저항하는 것이 집단지성이다. 집단지성이 침묵할 때 공동체는 파멸로 치달린다. “악이 승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한 자들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통찰이다.


지역감정에 이끌리는 투표는 주권자의 자해행위다. 꼭 내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와야할 정당한 이유가 있을 턱이 없다. 이즈음에는 내 동향인이 아니더라도 내 지역을 끔찍이 아껴주겠다는 후보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지역민에게는 애향심일지 몰라도, 어떤 후보에게는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공학일 수 있다.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이룰 가능성은 전혀 없다.


거짓 선동이 선거판을 마구 휘젓는다. 이쪽 후보의 장점보다 더 뛰어난 저쪽 후보의 우수성이 오히려 단점으로 뒤집히고, 저쪽 후보의 약점보다 더 치명적인 이쪽 후보의 과오가 도리어 강점으로 둔갑한다. 돈 뿌리기 선심공약도 내가 하면 복지,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다. 적폐청산도 한쪽에서는 정의실현, 다른 쪽에서는 정치보복이다. 정치꾼들이야 원래 그렇다지만, 소위 지식인이라는 교수·언론인·법조인들까지 나서서 지껄이는 선동질에는 구토감이 솟구친다.


무속논란, 무술경쟁까지 등장한 한국 대선을 가리켜 영국의 더 타임스는 ‘오스카상을 받은 한국영화 기생충보다 더 생생하게 추한 면을 드러낸 쇼‘라고 꼬집었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가운데, 북한은 오히려 러시아를 두둔하고 한국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우리 안보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이 비극적 상황에 대한 후보들의 태도도 대조적이다.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투표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주권의 포기다. “정치는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행사가 아니다. 선거란 ‘덜 나쁜 놈’을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가장 나쁜 놈’이 다 해먹는다.” 함석헌의 선거참여론이다. 후보들이 모두 마뜩찮더라도 그나마 비교우위에 있는 ‘덜 나쁜 놈’을 뽑아야할 텐데, 비교할만한 장점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면 하다못해 단점이라도 비교해서 ‘가장 나쁜 놈’을 걸러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울며 선택하는 차악…, 그토록 끔찍한 선거는 아니라 믿고 싶지만, 어차피 선택의 고민은 피하기 어렵다. 그 고통스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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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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