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막장 선거판, 도마뱀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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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막장 선거판, 도마뱀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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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폭이 넓어 정답을 찾기 어려운 상태를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고 한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뜻으로 『열자 설부편(列子 說符篇)』에 있는 말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다보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할 때가 적지 않다. 두 갈래 혹은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날 수 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햄릿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심리상태를 선택장애 또는 결정불능증후군이라고 한다.  


선택장애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답이 없거나 정답을 모르거나, 선택할 대상이 많거나 선택의 목적을 망각했거나…. 어느 한쪽 길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 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두 길이 엇비슷하거나 겉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일 때 고민에 빠져든다. 이 경우에 정답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선거만큼 선택의 고민을 안겨주는 경우도 드물다. 여러 정당, 수많은 정파에서 나온 후보들 가운데 과연 누가 국정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지, 또는 당선된 뒤에 무능이나 부패로 국정을 그르치지 않을지, 아무런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정치사에서 선거 후 상당 기간이 지나도록 자기 선택에 후회하지 않은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반복된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아예 투표를 포기하고 정치를 외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가 정치를 외면한다고 해서 정치도 그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독재권력은 다수의 무관심 속에 싹튼다. “국민들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권력자에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히틀러가 고백처럼 내뱉은 망언이다. 


왜 선택에 실패하는가? 후보들의 됨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탓도 있겠고, 선거의 목적을 망각한 탓도 있을 터이다. 특정한 이념·정파·지역·계층의 손에 이끌리거나 사사로운 개인적 동기로 투표장에 나가는 것은 왜 선거를 하는지의 목적의식이 결핍되어 저지르는 선택의 오류다. 조지 버나드 쇼는 ‘선거란 무능한 다수가 부패한 소수를 뽑는 것’이라는 독설을 남겼다. 


또 다른 오류는 완벽한 후보를 찾으려는 열망에서 온다. 완벽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현실의 만족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조건으로 역량, 운명, 기회, 시대적 필연성, 상황 적응력 등을 꼽았지만, 현실에서 이 모든 조건을 골고루 갖춘 정치인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판의 현실은 거짓투성이다. 어제의 말을 오늘 스스럼없이 뒤집고, 자신이 받아야할 질책도 남에게 덮어씌운다. 주권자인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작태다. 정치꾼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저들의 거짓선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플라톤의 철인통치를 반대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치를 으뜸의 정치로 보았다. ‘정치현실에 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게 된 현대 문명국가들은 법치주의를 ’차선의 지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이상이 아니라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현실적 적합성을 추구해야 선택의 실패를 피할 수 있다는 경험적 각성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깨달음이다. 


원내 제1,2당의 대통령후보가 모두 법조인이기에 법치주의에 대한 기대를 가져볼 만한데, 유감스럽게도 두 후보 모두 범죄혐의자로 고발된 상태다. 아직은 무죄가 추정되는 피의자 단계이지만,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선거 후의 정국이 요동칠 수 있다. 후보들의 병역미필이나 범죄전과도 개탄스러운데, 그들 가족의 비리 의혹까지 숱하게 터져 나온다. 법치주의의 기대는커녕 범죄친화의 걱정이 스멀거린다. 선택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막장 선거판이다. 


최선의 후보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었다. 다만 정직성, 신뢰성에서 그나마 누가 좀 더 나은지, 안보·일자리·국민통합 등 핵심정책은 무엇인지를 가려보되, 그 밖의 선택조건들은 아쉽지만 과감하게 끊어버릴 수밖에 없다. 위기 앞에서 제 꼬리를 잘라야하는 고통이 꼭 도마뱀만의 비애는 아니다. 선택장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겪어야하는 우리 국민의 아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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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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