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스 & 파더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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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 & 파더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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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비대면 자택수업으로 인하여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인근에 살고있는 초등 1년생인 손자가 체중이 불어난 듯 하다. 그래서 주말이면 인근 동네 뒷산으로 손자의 손을 잡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기 시작한지도 몇 주가 지났다. 마침 오늘따라 산등성이 위의 초지(草地)에는 수백 마리의 양떼들이 풀을 뜯느라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광경이 눈에 띈다. 무인(無人) 양치기 방목(放牧)인지라 羊치는 사람은 안보이고 대신 전기열선의 임시 펜스내 덩치 큰 개 몇 마리가 양들 무리와 함께 섞여 한가로이 누워 있다. 같이 걷는 손자가 때로는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해서 산책이 끝나면 매번 마켓 델리 코너에서 샌드위치를 사주곤 하는데 그날은 마침 마더스데이라서인지 마켓에서 꽃다발과 선물들을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년 마더스 & 파더스데이 시즌에 본 영화로는 ‘Four Good days’와 ‘The Father’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강하다는 말과 함께 세상의 아버지들도 모두 장하다’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필자에게 두 영화 모두 강하면서도 약한, 약하면서도 장한 어버이들의 면모를 통하여 다시금 인간에 대한 성찰을 느끼게 한다. 우선 마더스데이와 관련해서 본 ‘Four Good days’의 첫 장면은 헤로인에 중독되어 한동안 집을 나갔던 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극중에서는 딸(밀라 쿠니스)을  헤로인 중독으로부터 구해내려고 사투(死鬪)를 벌이는 강한 어머니 역을 맡은 글렌 클로즈의 대본과 순발력을 뛰어넘는 육신의 처절한 연기가 일품이다. 글렌 클로즈의 경우는 공교롭게도 얼마전 공개된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도 알코올과 약물중독으로 망가진 딸(에이미 아담스)을 둔 강한 어머니이자 극중 할머니로 배역을 맡아 열연을 해서 격찬을 받기도 했던 배우다.


한국영화 쪽으로도 강한 어머니 배역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배우는 몇 해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했던 배우 김혜자인데 어눌하면서도 강인한 모성(母性)의 지독함을 출중하게 연기했던 배우다. 지나간 60~70년대의 으뜸가는 어머니 역할이라면  여배우 황정순을 꼽을 수 있다. 주로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당시로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像)을 맡아 심금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흰색의 한복을 입고 광주리 행상을 나서던 장면이 기억된다. 다가올 유월의 파더스데이와 관련해서는 앤서니 홉킨스가 치매걸린 아버지 역할로 나온 ‘The Father’다. 83세의 웨일즈 출신의 노배우 앤서니 홉킨스에게 금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다. 점차로 쇠퇴해져가는 기억력과 치매증상을 가진 노년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보호자 역할의 딸(올리비아 콜린스)과 함께 앙상블 연기를 펼친다. 극중 딸 앞에서는 애써 강한 체 하느라 때로는 근엄하고 굳이 침착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타인인 간호사나 간병인 앞에서는 감정 컨트롤을 못한 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치매걸린 아버지의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영화제 시상식 당일, 앤서니 홉킨스가 본인의 남우주연상 수상식에는 불참하고 바로 그 시각, 고향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묘소앞에서  애송하던 시(詩)로  사부곡(思父曲)을 부르고 있었다는 소식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편으로 한국영화계 아버지 역할로 유명한 배우를 꼽는다면 구수한 목소리와 털털한 모습의 김승호 선생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한국전 전후(前後) 암울했던 시대, 가족을 위해 몸이 부셔저라 일하는 아버지 역할로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명배우다. 극중 겨울이면 늘 허름한 점퍼 차림에 귀밑까지 내려오는 군용모자를 눌러쓰고 열연했던 그다. 김승호 선생 이후로 최근에는 탤런트 박인환이 눈길을 끈다. 오랬동안 드라마 극중에서 아버지 역할로 친근했던 그가 이번에는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발레리나에 도전하는 ‘덕출’의 역할을 맡았다. 평소  천연덕스러우면서도 페이소스한 연기로 가장(家長) 역할을 해냈던 배우다.


여하간 필자가 오래전 지인 몇명과 함께 1박2일간 일종의 수련회 성격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밤늦은 시각에 각자 돌아가면서 가족과 관련된 사적인 얘기들을 털어놓는 순서가 있었는데 참석자 중 한명인 ‘J’의 고백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다소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던 얘기인 즉, 일상중에 그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오랫동안 강압적이고 엄한, 아들의 진로에 대하 여 일방적인 부자(父子)간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 하이틴 스타 ‘이현’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당시 야구 등 여타 운동장에서 응원가로 자주 불려졌던 노래, 혹은 밤늦게 나이트 클럽에서 문닫는 시간이면 자주 틀어주던 노래 ‘잘 있어요’를 부른 가수다. 최근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를 털어놓은 기사가 나오는데 옮겨보자면 이렇다. 평소 연예계 생활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육군 장성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한창 인기 절정인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이현에게 가수생활을 반대하면서 그만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말을 듣고 늘 아버지의 말이라면 거역한 적이 없던 그는 당시 대단한 인기가수로서 영화배우로도 잘나가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활동무대를 떠났다고 했다. 훗날 그의 아버지도 결국 작고하기 직전에는 회한서린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넌 가수를 하는게 나을 뻔 했다”라고…. 그때와는 달라진 디지털 시대, 이제라도 어버이들이 돌아봐야할 일이 있다면  본인들 자신을 가끔씩 업데이팅 해주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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