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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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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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있는 연말 할러데이 시즌이다. 이맘 때면 늘 따라 다니는 게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세모를 장식하는 콘서트 레퍼토리. 며칠 전 서울에 사는 큰딸이 몇 년만에 조기방학을 한 초등생 꼬마 셋을 데리고 LA에 왔다. 반갑기도 해서 장식용 트리와 미니전구(電球)를 사려고 동네 홈디포엘 갔더니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이 여러 무더기로 나뉘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올해 볼 만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제럴드 데스먼드 브릿지'를 추천한다. 110번 프리웨이 남단에서 47번 도로로 올라 서면 LA와 롱비치항을 가로지르는 제럴드 다리가 있다. 케이블로 연결된 사장교(斜張橋, Cablestayed girder bridge)인 제럴드 다리의 불빛들이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해상 210피트의 교각 꼭대기에서 늘어진 수백 개 케이블의 위용과 함께 케이블마다 설치된 업라이팅 스팟라이트가 마치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흡사해 장관을 이룬다.  


이맘 때면 자주 듣게 되는 레퍼토리도 몇 곡 꼽아보자.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과 코럴 판타지, 오페라 ‘헨델과 그레첼’,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헨델의 ‘메시아’ 등 일 것이다. 그중 코럴 판타지(Choral Fantasy)는 80년대 즐겨 들었던 ‘암스테르담 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음반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울러 두 딸이 어렸을 적에 함께 보았던 유니버설 발레단의 어린이를 위한 ‘호두까기 인형’과 ‘국립발레단’의 발레공연도 이맘 때면 여전히 생각나는 프로그램 중의 일부다. 특히 메시아’는 연말이 되면 각 처에서 자주 대하던 곡이다. 


여러 해 전 서울에서 가족과 연말을 보낼 때의 일이다. '600명이 부르는 메시아(Messiah) 공연, 합창단원 모집 중’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모 교회에서 매년 주최하는 행사인데 종파에 관계없이 누구나 메시아를 부르기 원하는 사람이면 참가할 수 있었다. 해마다 참가자수는 600명으로 대다수가 아마추어 대원들이다. 10월부터 매주 한 차례 강남 양재동 사거리 온누리교회에 모여 연습을 했다. 연습은 저녁 7시에 시작해 밤10시께 끝났다. 


연습을 이끄는 지휘자는 "합창을 할 때는 자신있게 다소 공격적으로 해야 정확히 음을 낼수 있습니다. 물론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잘 어우러지는 합창이 될 수 있습니다”라며 열성으로 지도했다. 여하튼 아내와 함께 지원 후 매주 연습에 참가했다. 어느 날 연습 후 잠시 휴식을 취할 때다. 필자가 속한 베이스 파트에 함께 참여하는 낯 선 대원 몇 명과 우연히 얘기를 나누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대전에서 왔습니다.” 다른 한 사람의 답변인즉 “나는 강릉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늦은 시간 연습이 끝나면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귀가한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과연, 이 곡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우려도 됐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고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12월 중순 공연 당일, 무대막이 오르기 전 ‘메시아’ 연주장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는 수십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합창단, 솔로이스트들의 마지막 리허설로 분주했다. 드디어 막이 올라가고 600명이 함께 부르는 ‘메시아’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전, 나성영락교회에서 열린 한인기독합창단 제61회 정기연주회를 접했다. 심포니아의 서곡 연주와 함께 등단한 테너 솔로이스트의 울림이 컸다. 오랜만에 장엄하고도 따뜻한 합창소리를 들으니 한결 성탄절의 의미가 새로웠다. 마스크를 쓰고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의 기량이 높은 것은 충실한 연습량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가 끝나고 한동안 계속된 기립박수가 끝날 무렵, 지휘자 김동근이 등단해 연주회를 진행하면서 느낀 소감을 털어놓았다. "그 동안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때로는 만나야 할 사람과도 떨어져 지내야만 했습니다. 가고싶은 곳도 갈 수 없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메시아’의 악보 가사 중 ‘이르시되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는 메시아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하신 것 또한 전능하신 주님으로 인해서라 생각돼 기쁜 마음으로 연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여전히 팍팍한 일상을 맞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고받을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올해도 여전히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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