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의 세상만사] 혁신하려면 목숨을 걸 각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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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의 세상만사] 혁신하려면 목숨을 걸 각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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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혁신성장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한국 기업의 혁신 역량은 세계 주요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20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 나온다.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53%(2018년)로 세계 2위지만 올해 한국의 기업 혁신 역량(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국가경쟁력 평가 기준)은 31위다. 중국(19위)·일본(28위)에 뒤진다. 지난해 교역량이 세계 9위인 경제 규모에 비하면 혁신 역량이 의외로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혁신 역량이 부족한 이유를 국내 인재들이 한 연구와 기술을 산업이 받아내지 못하는 데서 찾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 것도 혁신 역량이 떨어진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요즘 기업에서는 혁신이 한창이다. 연중행사처럼 또 혁신이냐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쯤 혁신을 했으면 어딘가에서는 성공했을 법도 한데, 매번 혁신한다고는 해도 언제나 그 자리이기 때문이다. 혁신에 질린 사람들은 ‘혁신을 혁신하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기업의 생존이 걸린 절박감 때문에 강도가 이전과는 판이하다고들 한다.


혁신(革新)을 새삼 들여다봤다. 사전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말로는 다 같은 가죽이지만 한자는 다르다. ‘가죽 피(皮)’는 짐승의 털이 붙어 있는 가공되지 않은 원피(原皮)의 가죽을 말하고, ‘가죽 혁(革)’은 원피의 털을 뽑고 무두질을 한 가공된 가죽을 뜻한다. 원피를 얻기 위해 가죽을 벗겨내자면 살아 있는 짐승의 숨을 끊어야 한다. 신(新)은 살아 있는 나무를 도끼(斤)로 베어내고 다듬어 새롭게 한다는 말이다. 혁신의 두 의미 모두 산 짐승과 나무의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혁신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혁신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전에는 그 설명이 생략됐다. 혁신의 걸림돌이 ‘나는 바뀌지 않고 너희만 바꿔라’고 왜장친들 바뀌는 게 있을 리 없다.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출발선이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


섬유 염색가공업을 하는 A사는 8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으나 원단의 수요 감소로 그동안 매출이 감소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매출은 바닥을 기었다. 매년 혁신을 외쳤지만 적시에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회사는 유동성 부족으로 부도가 나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밟았다. 올 초 법원은 회사가 제시한 인력 구조조정과 원가절감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인정해 채무를 75% 탕감하고 인가했다.


다시 살아난 A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표이사 해임. 새로 선임된 B 사장의 혁신은 원피를 얻는 데서 출발했다. B 사장은 회사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혁신 다섯 가지를 기다렸다는 듯이 착착 진행했다. 소사업 5개 중 3개를 정리하고 신사업 2개를 추가해 모두 4개로 라인업했다. 헤드헌터를 통해 업계 최고 전문가 둘을 초빙했다. 그들에게 팀을 꾸리게 하자 직원의 4분의 3이 바뀌었다. 기존 채권자와 접촉해 모두 조건을 변경하고 새로 계약했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서류상으로만 남아있던 그동안의 혁신계획은 한 번에 실행에 들어갔다. 예전 매출액을 뛰어넘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입소문이 더 빨랐다. 양질의 제품이 거래처와 고객을 바꾸고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A사가 이름만 남고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기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A사의 혁신을 보면 두보(杜甫)의 ‘전출새(前出塞)’라는 시에 나오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擒賊先擒王].” 적의 장수를 잡으면 병력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전쟁할 때에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만사 대충해서 되는 일은 없다. 근치(根治) 없이 완치 없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덧나기만 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다른 생명을 앗아야 하는 만큼 목숨을 건 각오 없이 혁신은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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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니스트: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벤처중소기업학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예쓰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사)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 학교법인 영신학원 감사, 멋있는삶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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