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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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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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54년 로마교황 리베리우스는 태양신 축제일인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공포한다. 아마도 기독교를 로마사회에 토착화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예수의 탄생일이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동방정교의 성탄절은 1월 6일 또는 7일이다. 성탄 전야에 목자들이 들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누가복음의 기록에 비추어, 늦어도 10월 하순경을 지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탄절인 12월 25일은 어수선하고 들뜬 송년 분위기 탓에 성탄의 영성(靈性)이 어지간히 흩뜨려진다. 거리의 스피커들이 흥겨운 캐럴을 쏟아내는 세밑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성탄절이 가까워올수록 어떤 물음 하나가 절실하게 떠오른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던진 물음이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유대의 분봉왕 헤롯 빌립이 목동의 신 판(Pan)을 섬기는 파네아스 지역에 건설한 로마식 도시였다. 빌립은 그 우상의 도시에 로마의 최고신 유피테르(제우스)와 로마황제(가이사)의 신전을 건축하고, 가이사에게 자신이 헌정한다는 뜻으로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로 개명했다.


제왕과 신들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제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 부패한 정치권력, 종교권력과 우상숭배의 무리에게 심판을 경고한 예언자들이다. 이어서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이 등장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로마 치하에서 ‘주(主)’나 ‘신의 아들’은 모두 유피테르의 후손이라는 로마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황제숭배 칭호였다. 유대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에게 허용될 수 없는 신성한 호칭이었다. 그 지엄한 명칭을 베드로가 예수에게 바친 것은 정치적‧종교적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혹자는 여기에서 예수공동체의 정치적 혁명사상을 읽어낸다. 황제숭배의 정치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를 신의 아들인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를 뒤엎고 새로운 이스라엘 신정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독립의지의 표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지 않았다. 칼을 주러 왔다.” 이렇게 선언한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던가?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 중에는 칼을 품은 무장독립투쟁가 젤롯(열심당원)도 섞여있었다. 배반한 제자 가룟 유다의 고향 이스카리옷은 암살자·자객·단검이라는 뜻의 시카리오와 같은 말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기층민들이 모여든 예수의 주변에서는 분명히 어떤 혁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었다. 무슨 혁명인가?


예수는 결코 정치적 혁명을 꿈꾸지 않았다.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정치운동을 그는 단연코 거부했다.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한다. “그대가 유대인의 왕인가?” 예수가 대답한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 너머에 있다. 마음과 영혼에 깃드는 예수의 나라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도록 섭리하는 믿음·소망·사랑의 세계다. 이것이 크리스천들이 믿고 바라는 개인과 사회의 전인격적·전존재적 혁명이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이 성경책을 들고 교회나 성당에 나타나곤 한다. 특정후보에게 박수를 보내며 지지를 호소하는 성직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정치투쟁의 깃발도 아니다. 그는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섰을지언정 저들과 손을 잡은 적이 없다.


예수의 이름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메시아의 소명을 모독하는 일이다. 이번 성탄절에도 신도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나 큰 성당에는 대통령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멋쩍은 얼굴을 내밀 것이다. 예수는 저들에게 제왕과 우상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물음을 다시 던진다. 토머스 칼라일이 ‘영혼의 평안과 소망이 달려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고백한 그 물음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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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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