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속닥속닥] 단풍과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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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속닥속닥] 단풍과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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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단풍은 대충 한로(寒露)에 시작해 상강(霜降)에 마무리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단풍이 내리는 시기가 늦춰졌다. 짧게는 이레 아니면 열흘 정도. 지구 온난화 탓이런가. 


24절기 가운데 17번째인 한로가 되면 찬 이슬이 내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게 마련인데, 그러면 얼추 활엽수들은 낙엽을 만들고, 그 준비단계로 울긋불긋 물들여 단풍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산으로, 산으로 빠져든다. 햇볕마저 기운이 이울어 어딘가 스산한 느낌이 짜한데 새빨갛거나 샛노란 원색이 눈앞에 살랑거리니 목석이 아니고선 제아무리 항우장사라도 못 본체 버틸 재간이 없다. 오랫동안 코로나 역병에 시달린 갑갑증 때문일까, 요즘 주말마다 설악산 등 단풍명소엔 수만 명씩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블랙홀이 따로 없다. 하지만 농사꾼만은 예외다. 애당초 그들한테 단풍이란 없다. 오직 저물어가는 철에 수확을 재촉하는, 뿌듯하면서도 숨 가쁜 조락(凋落)일 뿐이다. 그 잘난 도시내기들이 ‘농투성이’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원래 농사란 게 그런 것이니까.


#모든 식물은 이때가 되면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도 죽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남기는 작업이다. 어쩌면 식물들은 삶 끝에 후손을 남기는 게 아니라, 아예 이 일을 위해 한 해를 사는 지도 모른다. 그네들이 한 해를 산 결과를 우리는 ‘씨’라고 이름붙이고, 거침없이 자기 것으로 알겨 거둬들인다. 이것이 농사일이다. 벼이삭이 누렇게 물들면 벼를 걷고, 고추가 빨개지면 고추를 따는 것일 뿐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 농부는 수확을 위해 한 해를 사는 게 아니라 수확을 하다 보니 한 해를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남들이 단풍놀이니 뭐니 법석을 떨 때도 그저 “미친놈들 땐스한다!”며 콧방귀나 슬쩍 튕기고는 사정없이 논밭에 눈코를 박고 가을걷이에 매달리는 게 농심(農心)이다.


#추수는 봄의 파종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의 예술’이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탈이다. 더구나 그야말로 오곡백과가 동시에 손을 벌리니 눈 코 뜰 새가 없다. 모내기철에 못지않게 정신이 없다. 오죽하면 이 시절엔 ‘대부인(大夫人)마나님도 나막신 짝 들고 나선다’거나 ‘부뚜막에 졸던 부지깽이도 뛴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추수철에 해야 하는 일이 오만가지이고, 어느 한 가지 허수히 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이 워낙 째는 터라 완급의 순을 매길 수밖에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으뜸으로 할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네의 주식거리인 벼 거두기. 쌀 한 톨을 얻으려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탓에 그 회수가 무려  ‘여든 여덟 번(쌀을 가리키는 米자를 破字풀이 하면 八十八이다!)’이라는 절묘한 해석까지 동원할 정도로 끔찍이도 중하게 여긴 것이 벼농사이다. 사실 이른 봄 볍씨를 쳐서 못자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타작을 거쳐 벼 가마를 집안에 들여놓기까지 얼마만큼의 손길이 가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벼처럼 거지반 한 해를 들여야 하는 농사는 없다. 단풍이 시차를 두고 위도와 고도가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낮은 곳으로 이어지듯이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서울 근교인 우리 동네에서 대충 입추~처서 사이에 이삭이 패고, 한로~상강 즈음에 벼 베기가 이뤄지곤 했다.


#요즘엔 콤바인으로 베기부터 탈곡까지 한 줄에 꿰어 수확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일꾼들이 낫으로 일일이 베야 했다. 주로 동네 사람들이 두레형식으로 집집이 돌아가며 벼 베기를 하곤 했는데 수확기가 같아 순서를 정하느라 때론 제비를 뽑기도 했다. 동네 남정네라고 해봐야 일할 사람은 뻔한 데 일은 한꺼번에 몰리니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 가운데 있는 벌판을 둘러싸고 40여 호가 농사로 먹고사는 마을이라 순서를 맨 꼬래비로 받으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이상 벼 베기가 늦어져 애간장이 다 타버리기 일쑤였다. 베는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벼 포기가 고스러져서 조금만 건드려도 이삭이 바스러지고 낟알이 떨어지는 판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어떤 집에서는 자기네와 친한 사람들을 충충거려 순서를 어겨가며 벼 베기를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해서 쌍알이 질 경우 제 차례인 집에선 일꾼 수가 그만큼 부족해져 두 집이 서로 싸우느라 가을벌판이 시끄러워지고, 심하면 드잡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벤 벼는 아직 줄기와 잎에 물기가 남아있어 논바닥에 깐 채 적당히 말려야 한다. 볕이 좋으면 사흘 정도 지난 뒤 뒤집어 다시 사흘 말리면 된다. 너무 말리면 이삭이 부러지기 쉬우니 잎과 줄기의 푸른빛이 사라지고 허푸성하지 않게 부피가 줄어든 것 같으면 딱이다. 다음 순서는 낟가리로 쌓고 비 가림을 해뒀던 볏단에서 벼 알갱이를 털어 가마니나 섬에 담아 거둬들이는 타작(打作).  타작은 글자 뜻대로 원래 커다란 돌이나 엎어놓은 절구통에다 대고 볏단을 메쳐 알곡을 털어내는 ‘태질’이나 도리깨질을 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탈곡기가 등장하고부터는 비록 인력을 이용하는 것일지라도 작업능률이 태질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이내 타작의 대표적인 수단이자 대명사처럼 됐다.  


#지금은 콤바인 시대다. 콤바인은 아예 벼가 서 있는 논 위를 오락가락하면서 벼 베기를 하는 동시에 탈곡 및 선별작업을 하는 수확기계로, 턴 낟알은 그대로 부대에 담겨 건조장으로 운반된다. 그 옛날 두 개의 막대기를 한데 묶어 집게 모양으로 만든 뒤 벼이삭을 사이에 끼워서 훑어내는 ‘훑이’나, 납작하고 길쭉한 쇠못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아 빗 모양으로 만들어 벼이삭을 끼워 훑어내는 ‘홀태(그네)’를  사용했던 할머니께서 계신다면 틀림없이 도깨비장난으로 여기셨을 게다. 단풍철이면 언뜻언뜻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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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 칼럼니스트: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한국 중앙일보에서 경찰, 국방부 출입 등 사회부기자를 거쳐 문화재 및 인터뷰 전문기자를 지냈다. 향수를 자극하는 사투리나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에 탁월하고 유려한 문장을 더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특산물 소개 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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