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의 세상만사] 이직자는 배신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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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의 세상만사] 이직자는 배신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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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직장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불만을 품는 비율이 85%에 이른다고 한다. 나머지 15%, 열 명 중 한두 명은 만족한다는 얘기다. 다른 연구를 보면 직장생활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응답한 직원 중에서 이직자가 꼭 나오는 건 아니라고 한다. “직장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직원은 퇴직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S주물 L사장이 한 말이다. 인천에서 50년 된 유망 중소기업을 선친에게 물려받아 30년째 경영하면서 얻은 그의 경험칙이다.  


요즘 직장인들이 흔들리고 있다. 취업플랫폼 잡코리아 조사로는 직장인 중 ‘최근 이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무려 94.7%다. 열 명 중 여섯은 이직을 보류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직을 보류한 직장인 열 명 중 일곱은 보류 결정을 후회한다고 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인사관리협회(SHRM)는 1년 사이 가파르게 상승한 퇴사율을 ‘턴오버 쓰나미(Turnover Tsunami)’라며 우려했다. 올해 자발적 퇴사자가 노동시장에 쏟아지자 이를 ‘쓰나미’에 비유했다. 코로나19 대확산 여파로 미국에서는 이직률이 지난 20년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직장을 떠난 근로자 비율을 2.7%로, 전년도(1.6%)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WSJ은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원들이 원격 근무의 유연성을 선호하게 된 데다, 코로나19가 진행 중이어서 사무실 출근을 꺼린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직장인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을 통해 삶을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스텔스 이직이 유행이다. 소리소문 없이 직장을 옮긴다고 해서 생긴 신조어다. 업계 현직자와 이직 희망자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는 퇴근 후 남는 시간 집에서 간편하게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게 특징이고 대부분 익명이어서 소문나지 않아 인기다. 비트코인 열풍,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 직장인들을 흔들고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퇴사 학교’까지 생겼다. 다녀간 직장인이 1만 명이 넘어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


“이직자는 배신자가 아니다”라고 L사장은 주장한다. 이유를 그는 “회사가 만족할만한 직장일 것이라는 믿음을 줘 입사한 직원에게 회사가 발전하지 못해 약속을 먼저 어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 통계로는 300인 미만 중소업체 이직률은 평균 5.0%를 넘는다. S주물은 0.2%다. 이직할 직원은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L사장은 B플레이어를 뽑는다. 특출한 사람보다 보통실력을 갖춘 인재를 뽑는다. 보통의 인재를 보는 그의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면접할 때 “방 청소를 누가 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두를 닦아 신고 왔는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고위험, 고난도의 업무 특성상 매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직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방 청소를 하는 면접자에게서 가정교육을 본다고 했다. 효(孝)를 통해 충(忠)을 본다고도 했다. 그는 “구두를 닦아 신으면 거기에 어울리게 옷도 청결해야 하고 머리도 다듬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하며 선대에 물려받은 방식이라며 “틀림없다”라고 강조한다.


L사장은 뜻밖에 “이직하려고 맘먹은 사람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붙잡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 다른 회사에 다니는 이직자를 자기 회사 직원과 똑같이 ‘관리’한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만나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고 회사 행사에 초대하고 소식도 전해준다고 했다. 직원 한 명이 이직할 때 회사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그 직원 연봉의 두 배라는 연구도 있다. 이직자가 한 일은 남은 직원들이 머리를 짜내 반드시 마무리 짓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L사장의 진심을 깨달은 이직자가 재입사한 일도 있다고 했다. 그는 돌아온 직원에게 “당신이 맡은 업무의 국내 최고 기술자를 모두 찾아내라”고 특별 업무를 줬다면서 해병대 출신답게 “한번 몸담았으면 식구”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이직자의 절반은 돈 때문에 흔들리지만 직장에서 또렷한 자기 업무의 성취감이 있으면 이직을 막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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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니스트: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벤처중소기업학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예쓰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사)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 학교법인 영신학원 감사, 멋있는삶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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