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시각장애 유학생, 미국서 교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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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시각장애 유학생, 미국서 교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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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함께한 안내견도 석사모 썼네 - 서주영씨가 지난 2016년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석사 학위수여식에 안내견 아랑이와 함께 나란히 학위모를 쓴 모습. 다음 달 박사 학위를 받고, 오는 8월 미 일리노이대 조교수로 임용되는 서씨는“기술을 통해 정보 습득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주영씨 제공 




“안내견과 단둘이 와서 ‘벼룩의 천장’ 깼어요”

서주영씨, 국비유학 왔다가 일리노이대서 임용 



2014년 시각장애인으론 처음으로 국비(國費) 유학을 떠난 서주영(31)씨가 오는 8월 일리노이대(어바나-섐페인) 정보과학대 조교수로 임용된다.


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12세에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눈 앞 사물만 흐릿하게 구별할 수 있다. 성균관대에서 교육학·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내 첫 ‘시각장애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에서 공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반 가족도 없이 ‘유일한 빛’인 안내견과 단둘이 미국으로 떠난 지 7년 만이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는 대신 미국에서 교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 국비로 유학을 해도 규정상 본국에 돌아와야 할 의무는 없다.


그는 지난 14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국가 도움을 받아 공부한 입장에서 마음에 짐이 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선 제가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라며 “한국의 약자(弱者)들을 잊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겠다”고 했다.


1990년생인 그는 여느 소년들처럼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수퍼마리오’. 초등학교 5학년 때 급격히 시력이 떨어져 맹학교로 전학을 간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절대 (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의 80~90%가 안마사를 해요. 각자 적성과 재능이 다를 수 있는데 안마사 아니면 사회복지, 특수교육, 종교인처럼 획일화된 직업에 내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교실에서도 그런 한계를 느꼈다. “맹학교 시절, 한 선생님이 ‘너희는 수학 수능 5등급 맞는 걸 1등급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벼룩이 뛸 수 있는 천장을 만들어놓은 거죠.”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 이상 높이 뛸 수 있지만, 상자에 가둬 키우면 천장에 자꾸 부딪히다가 결국 알아서 낮게 뛴다는 유명한 곤충 실험을 빗댄 말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시각장애인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점자(點字)로 된 변변한 전공 서적조차 없었다. 기존에 장애인들이 해왔던 사회복지, 특수교육 같은 분야로만 모든 길이 닦여 있었다. 결국 교육학으로 진로를 틀어야 했다.


미국 유학을 꿈꾼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한 복지 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 시애틀에 6주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의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전혀 안 보이는 분인데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또 회계사, 철학가, 교수로 일하는 시각장애인을 만나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죠.”


대학 졸업 후인 2014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도 ‘장애인의 천국’은 아니었다. 안내견과 함께 택시에 타려다 승차 거부를 당하거나 식당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서씨는 “미국에선 장애와 상관없이 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스스로 ‘내가 이만큼 뛸 수 있구나’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다녔던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선 그의 통계 수업을 위해 7000달러를 들여 점자 교재를 만들어줬다.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 수업에서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 A+ 학점을 받았다.


“저도 놀랐어요. 장애·비장애를 떠나 각자가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정보를 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벼룩의 천장’이 깨진 순간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교육과 공학의 접점인 교육공학을 공부했다. “제 연구의 키워드는 ‘접근성’이에요. 보통 1시간이면 될 것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3~4시간을 공부해야 해요. 기술을 통해 그런 정보 습득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그는 소위 ‘수퍼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교수가 된 장애인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란 특이한 한 사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어요. 점(點)이 아닌 선(線)으로 이어져야죠. 지금은 제가 최초이고 특별할지 모르지만 이런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면 좋겠어요.”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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