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누렁이' 시사회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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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누렁이' 시사회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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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팅턴비치 해안가에 원유가 유출되기 직전, 그 곳 Dog beach에서는 개와 사람이 팀을 이뤄 서핑하는 경기가 열렸다. 경기장 주변에는 ‘Dog surfing 2인1조 경기’ 모습이 담긴 보도사진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과 동일한 모양의 선글래스를 쓴 채 서핑보드 위에 올라가 자세를 잡고 있는 개의 포즈가 그럴 듯 했다. 항공기의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주인과 함께 여행하는 반려견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은 시절이다. 


얼마 전, LA한인타운 영화관에서는 식용견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영화 ‘누렁이’ 시사회가 있었다. 여기서 '누렁이'는 식용견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미국인 감독 캐빈 브라이트가 한국의 식용견문화에 대해 조명한 영화다. 이 영화는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인데 아직도 식용개를 사육하고 먹느냐,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위해 동물애호가인 재미한인 박소연씨를 포함한 제작팀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촬영했다고 한다. 시사회가 끝난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캐빈 감독은 한국 내 개고기문화에 대한 호불호나 폄하가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필자는 캐빈 감독의 작품을 보고나서 애완견, 반려견, 맹호견, 수사견, 안내견, 식용견 등의 다양한 이름의 개(犬)문화가 이제는 사람과의 일상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앞 못 보는 사람들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안내견은 요즘은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공공장소를 지날 때 안내견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보호자 역할을 한다. 안내견과 관련해서는 생전의 삼성 이건희 회장 관련 일화가 있다. 그는 생전에 안내견 육성 및 보급을 위하여 ‘안내견 학교’를 설립했다. ‘안내견 학교’는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안내견 양성기관으로 IGDF(국제안내견협회)의 정회원 학교다. 1994년 첫 안내견을 배출한 이래 축적된 선진 훈련기법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매년 수 십 마리를 육성, 시각장애인에게 무상으로 분양했다. 


또, 안내견 번식부터 은퇴까지 '퍼피워커' 등의 많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확대해 생명존중과 동물애호 정신을 전파하는데도 일조했다.(조선일보 2020.4.26 기사 참조). 또한, 반려견인 한국의 토종 진돗개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은 인연이 깊다. 그는 전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연맹인 영국 커넬클럽(The Kennel Club)에서 진돗개를 커넬클럽이 공인한 197번째 명견으로 등록하는데도 앞장섰다. 이 회장은 한국이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했다. 


‘누렁이’하면 한국의 한 건설업체에서 근무하던 80년대 초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서초동 예술의 전당 뒷산이나 방배동 인근 야산에는 보신탕집들이 많이 있었다. 단체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고참들이 앞다퉈 자주 향하던 곳이다. 선호하던 식품은 아니지만 단체회식인지라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누렁이’ 극 중에서는 한국전쟁 후 단백질 보충이 어렵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내려온 음식문화인데 왜 금지하려느냐라고 주장하는 개고기 예찬론자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반면, 동물애호가나 개식용 반대 측 입장에서는 이젠 개식용 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지금도 전남 진도에 가면 진돗개 테마파크가 있다. 각종 사육장면이나 조련사들도 등장하여 온 가족 즐길 수 있는 광경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 보니 남녀노소 즐기는 유명 테마공원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원 인근 지척거리에 버젓이 ‘보신탕’이라고 쓴 대형간판이 걸린 식당이 있다. 


'누렁이’ 시사회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서 감독을 향한 관객들의 제안 중에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가정으로부터 버려지는 ‘유기견’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때도 됐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를테면 누렁이로 대변되는 한국의 식용 개고기 문화뿐만이 아니라 같이 지내던 개를 방기(放棄)하는 세계 각지의 유기견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고하고 있다는 얘기다. 


며칠 전 110번 프리웨이가 끝나고 롱비치로 넘어가는 49번 도로 변에 위치한 ‘하버 유기견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수많은 유기견들이 철창우리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진도(JinDo)’라는 팻말이 붙은 진돗개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튼 세상의 인구는 줄어들고 각종 강아지들이 줄어든 인구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반려자 역할을 대신하는 때다. 그래서일까. 종전과 다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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