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의 세상만사] 한계기업, 버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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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의 세상만사] 한계기업, 버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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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인 M전자 H사장은 좀비영화는 보지 않는다. 5년 전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가 좀비기업으로 낙인찍히고부터다.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간신히 파산을 면하는 상태를 지속하는 한계기업을 좀비기업이라 부른다. 죽은 거 같지만 다시 살아나는 좀비를 빗댄 한계기업의 별칭이다. 그의 회사는 은행이 ‘이자보상배율이 1이 넘지 않는다’며 한계기업으로 분류해 좀비기업이 됐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한 해 수입에서 얼마를 이자로 쓰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으로 나눠 산출한다.  


은행원이 “이 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해 번 이익으로 이자조차 낼 수 없으므로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본다”라고 설명해줬다. H사장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이자도 연체하지 않고 잘 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봤지만 허사였다. 금리를 올리고 푸시아웃(Push out) 대상이 돼 거래하던 은행이 밀어내자 여러 금융기관에 손을 벌렸지만 모두 좀비 대하듯 했다. 그렇게 버티던 H사장은 현장에서 쓰러졌다.


2019년 기준으로 1466개 한계기업을 관찰한 산업연구원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 제조업 외감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11년 약 5.0%에서 2019년 약 11.9% 수준까지 계속 증가했다. 코로나19는 이런 추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020년 한계기업으로 새로 진입한 제조업 상장기업은 211개다. 직전 5년간 연평균 약 155개보다 36.1%가 늘어났다. 이는 상장기업에 국한된 관측치다. 상장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은 더 많다. 보고서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한계기업 증가 압력에 대해 정책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같은 해 기업경영분석으로는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 중 36.6%가 한계기업이다. 이 또한 코로나 사태 이전 자료다. 2020년 한계기업의 비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18.9%. 조사대상 25개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OECD 평균 한계기업 비중 13.4%보다 5.5%포인트 높고 한계기업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인 일본(2.5%)의 7.6배에 달했다. 한계기업은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가야 할 사회적 자원을 가로챔으로써 나라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한계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M전자는 병원에 누워있는 H사장을 대신해 증권사에 다니던 아들이 경영을 맡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분사(分社)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부문을 떼 출자전환하고 회사 원로 세 분에게 대표를 맡겼다. 생산공정 라인 6개를 한 개 조립 공정만 남기고 모두 폐쇄했다. 최고 품질을 제조하는 기업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값싼 최고품을 찾아내 조립만 하는 제조회사로 탈바꿈했다. 부품은 모두 하청업체에서 납품받았다. 국내 11개 사, 해외 6개국 8개 회사로 납품업체를 선정했다. 공장이 필요 없게 돼 임대하고 아파트형 공장을 얻어 회사를 이전했다. 회사명도 영문 이니셜로 바꾸고 끝에 테크(Tech)를 붙였다. 새 대표들은 모든 대출을 재심사해 낮은 금리로 바꿨다. 직원이 3분의 1로 줄고 부채도 줄었다. 1년 만에 매출이 1.5배로 오르자 재무제표의 모든 수치가 우량 중소기업으로 거듭나 한계기업에서 탈출했다. 


은행원들이 거래를 요청하러 줄을 잇고 있는 걸 보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된 H대표에게 탈출 비법을 질문하자 “잘 버리는 데 있다”라고 대답했다. 영국 언론인 길버트 체스터턴이 한 말 “무언가를 사랑하려면 그것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깨달으면 된다”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한 거를 버린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한다. 회사가 정상화되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한계기업이 탈출에 성공했다. 목제가구 제조업 코아스, 스마트카드 제조업 하는 코나아이, 호텔롯데 등이 한계기업 멍에를 벗었다. 원가절감, 판매 다각화, 신시장 개척 등이 탈출 비법이지만 결국 회사가 아끼는 것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손에 다 들고 있으면 더 큰 것을 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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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니스트: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벤처중소기업학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예쓰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사)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 학교법인 영신학원 감사, 멋있는삶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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