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길에서 주은 노끈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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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길에서 주은 노끈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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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알퐁스 도데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다. 도데의 따뜻하고 의식있는 글도 좋지만 타고난 이야기꾼 모파상의 매력은 대단하다. 모파상은 열두 살 때 부모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안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외삼촌 친구 플로베르의 지도로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모파상이 젊은 날에 심취했던 쇼펜하우어 철학과 불우한 어린 시절이 그의 문학 속에 비관적 주제와 소재를 낳은 것으로 본다. 모파상은 인간 내면에 대한 냉정한 묘사와 걸쭉한 풍자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모파상의 만담 같은 풍자소설 “노끈”의 줄거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노랭이로 평판이 좋지 않은 오슈꼬른 영감이 장터 구경을 나오다 길에서 노끈 한 오라기를 주웠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까운 마음에 신경통으로 아픈 허리로 억지로 주운 것이다. 그 때 얼마 전에 다투어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구 수선공 말랑땡 영감과 눈이 마주친다. 오슈꼬른 영감은 부끄러워 다른 물건을 찾는 척 허리를 구부린 채 얼른 지나갔다.

   

그런데 울브레이크씨가 오전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장터 거리에서 큰돈과 서류가 들어있는 가죽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오슈꼬른 영감은 읍사무소로 가서 조사를 받는다. 읍장은 오슈꼬른 영감이 거리에서 가죽가방을 줍는 걸 본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역시 제보자는 오슈꼬른 영감과 사이가 좋지 않은 그 마구 수선공 영감이었다.

   

오슈꼬른 영감은 노끈을 꺼내어 보여 주며 그때 주운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마구 수선공 영감이 잘못 볼 리가 없다며 믿어 주지 않았다. 말랑댕 영감과 대면했지만 그 영감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슈꼬른 영감은 자진해서 몸수색을 해봤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읍장은 그를 일단 돌려보냈다.

   

그 소식은 퍼져나갔다. 그런데 사람들은 호기심에 호들갑을 떨뿐 영감의 편에서 생각하거나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감은 계속 노끈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영감이 자신을 변명할 수록 사람들은 그를 우습게 여겼다. 다음날 어느 농장 머슴이 그 지갑을 길에서 주워 돌려주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오슈꼬른 영감은 누명을 벗었다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자기가 겪은 일을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오슈꼬른 영감이 아무리 노력해도 억울한 누명은 풀리지 않았다. 영감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더 믿지 않고 조롱했다. 영감은 이런 사실을 알고 피가 말랐으며 헛된 노력으로 몸이 쇠약해져 앓아누웠고 곧 죽고 말았다.

   

촘촘한 구성과 사실적 묘사로 일상을 작품화한 작가 모파상의 실력이 돋보인다. 주제나 교훈도 많지만 다른 사람의 평판 때문에 삶의 끈을 놓쳐버린 영감이 가장 안타깝다. 말랑땡 영감처럼 근거가 없는 평판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본다. 지극히 주관적인 악평을 만들어 내는 그들이 안쓰럽다. 공연히 악한 소문과 평가로 소중한 이웃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함이 안타깝다. 

   

최근 온갖 세간의 악평과 헛소문을 묵묵히 이기고 힘차게 사역하는 목사님 소식을 듣고 행복했다. 시시한 사람들의 평판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이긴 것에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 남들의 평판에 좌우되는 삶은 행복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공연히 악한 소문과 평판으로 이웃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더 어리석고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파괴하는 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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