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의 세상읽기] 2026년 새해와 범고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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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실의 세상읽기] 2026년 새해와 범고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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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정 실(문학평론가)

 

  할머니 범고래가 이끄는 무리들은 연어 떼를 따라 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은 단순한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 인간사회가 잊어버린 질서를 비추는 거울이다. 검고 흰 유려한 무늬를 지닌 범고래의 삶 속에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아름다운 질서와 관계의 조화가 뚜렷하게 깃들어 있다.

  범고래는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포드(Pod)’라 불리는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며, 어미와 새끼 그리고 할머니 범고래가 여러 세대에 걸쳐 함께 유영한다. 어른이 된 딸조차 무리를 떠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양육에 참여하는 모습은, 산업화와 핵가족화의 파도 속에서 인간이 상실해버린 공동체적 삶의 구조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이 공동체의 중심에는 언제나 할머니 범고래가 있다. 할머니는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노약자가 아니라, 무리의 방향을 제시하는 진정한 리더다. 그동안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먹이감의 이동 경로를 기억해내고, 위험한 해역을 피해 무리를 안전하게 이끈다. 노년의 지혜가 공동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결정적 자산임을 몸소 증명하는 것이다.

  범고래의 문화도 경이롭다.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포드 무리는 고유한 방언과 사냥방식이 다르다. 같은 종의 범고래이지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뚜렷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 사냥은 철저한 협력으로 완성해 낸다. 어떤 무리는 파도를 일으켜 먹이감을 몰고, 또 다른 무리는 물고기 떼를 한곳으로 모아 수확한다. 그리고는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이들에게 효율이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다. 이들의 문화는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 오늘날 우리 인간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미명 아래 각자의 화면 속에 고립시키며, 독립을 이유로 관계의 끈을 스스로 끊어내고 있다. 효율과 경쟁을 앞세워 노년을 사회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모습은 어떠한가. 성과와 서열에 매몰되어 조기 은퇴를 종용하는 현실이 되었다. 사회적 소외는 현대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인간사회 역시 언어와 전통 속에서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세계화와 표준화의 물결에 그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경험보다 데이터가, 대화보다 알고리즘이 우선되는 시대 속에서 세대 간 지혜의 흐름은 점점 단절되고 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일으켜 줄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4:9~10). 범고래의 삶은 오래된 이 진리를 현실에서 구현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서로 지켜주고 경험과 지혜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 공동체가 지닌 생존의 본질이다.

  2026년 새해의 첫 항로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분열과 고립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부터 각자도생인 속도와 경쟁을 멈추어야 한다. 범고래의 공동체처럼 우리 모두도 연결의 회복이 시급하다. 그리곤 어른들의 경험을 미래의 나침반으로 다 함께라는 방향으로 키를 돌려 거친 파도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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