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봉사는 '한국어진흥재단' 입니다"
길옥빈 변호사(한국어진흥재단 이사)
텍사스에서 제2의 인생 시작
한인들에게 부동산 노하우 전수
한국기업 위한 ‘플렉스 산업단지’도 착공
길옥빈<사진> 변호사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1.5세로 콜로라도 법대를 졸업한 뒤 198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한인 변호사가 드물던 시절부터 부동산, 비즈니스, 교통사고 등 각종 민사소송 분야에서 한인들의 고충을 해결하며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인물이다. 현재는 부동산 및 비즈니스 계약을 중심으로 한 상법 분야에 주력하는 한편, 텍사스에서 부동산 투자 및 관리회사를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비록 현재 거주지는 텍사스이지만 길 변호사는 정기적으로 LA를 찾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어진흥재단’ 때문이다. 그가 한국어진흥재단을 인생의 마지막 커뮤니티 봉사로 여기게 된 배경에는 학창 시절의 기억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글렌데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고 한국식 도시락 때문에 조롱을 받았던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렇기에 오늘날 타민족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 음식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어진흥재단이 이 변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길 변호사는 미국 내 공립학교에 한국어반이 새롭게 개설되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한인 정치력 신장에 기여
길 변호사는 1992년 LA 폭동을 계기로 한인 정치력 신장과 시민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사회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는 한미공화당협회 회장을 비롯해 LA시 경찰 인허가 심의위원회 커미셔너, 부시 대통령 아시아·태평양 백악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LA한인상공회의소, 한인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수많은 한인 및 주류사회 단체에서 봉사해 왔다.
지난 2000년대 초 우연한 계기로 한국어진흥재단의 법률고문으로 위촉되며 비영리 교육단체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약 25년 동안 제6기·10기·11기 이사장 및 이사로 재직하며 가장 오랜 기간 애정을 쏟아온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한인 정치력 신장에 꾸준히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타운 내 부동산 투자와 개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길 변호사는 한인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정치력 강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LA 지역 한인 인구 증가와 경제 활성화는 한인 시의원은 물론 주의회, 연방하원으로의 진출 확대를 가능하게 하며, 이는 곧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텍사스에서 제2의 인생
길 변호사가 텍사스 조지타운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막내아들이 댈러스 인근 중소도시에서 검사로 커리어를 시작한데 따른 결정이었다. 여기에 더해 텍사스에서의 부동산 투자와 관리는 그에게 새로운 활력이자 또 다른 보람으로 다가왔다. LA에서 35년간 변호사로 치열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업무 강도는 다소 단순하고 여유로워졌지만, 성취감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세입자의 성장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되고, 부동산이 단순한 자산을 넘어 지역 경제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조지타운 인근 테일러시에 위치한 삼성 반도체 공장에 부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 약 5에이커 규모의 현대식 ‘플렉스(Flex) 산업단지’를 내년에 착공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경쟁력 있는 한국 공급망 기업들이 텍사스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길 변호사는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된다면 자신의 부동산 개발 커리어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찬 이정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훈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