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론 못 막아도 분위기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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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론 못 막아도 분위기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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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간 유대관계가 강한 커뮤니티에 살면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AP


친절 서약 커뮤니티의 현실

'이웃 간 유대강화' 긍적적 효과

더 높은 삶의 질 제공 장점


이웃은 선택할 수 없는 존재지만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모두 친절한 이웃을 원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이웃 간의 친절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남가주 헤스페리아에 위치한 계획된 주택단지 ‘실버우드(Silverwood)’는 입주자들에게 ‘친절 서약(kindness pledge)’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혐오 표현을 삼가며, 개인적 소통을 장려하는 문화 조성을 위해서다. 점점 분열이 깊어지는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예의를 장려하면 더 나은 이웃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발업자나 건설사, 주택 판매자, 혹은 주택소유주협회(HOA)가 정말로 친절을 강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친절 커뮤니티에 사는 것이 실제로 집값이나 생활에 도움이 될까? 예비 주택 구매자가 알아야 할 점들을 짚어본다.


◇법적 현실: 강제할 수 없다

우선 이곳에서 살기 위해 진짜로 이웃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걱정은 접어도 된다. 친절 서약은 법적 구속력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권장 사항’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모호해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플로리다주의 HOA·콘도법 전문 변호사 도나 디마지오 버거는 “커뮤니티의 규약과 제한 조항은 명확하고 객관적이며 일관되게 집행 가능해야 한다”며 “토지 사용, 외관 기준, 특정 행동 등에 대한 규제는 가능하지만 막연한 친절함 요구는 법적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설명한다. 소음 과다, 쓰레기통 방치, 이웃을 위협하는 행동 등은 분명히 규제할 수 있지만 말투나 의견처럼 주관적 요소는 규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는다 하더라도 주관적 행동 기준을 강제하려는 시도는 차별, 선택적 집행, 주민의 권리 침해와 같은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버거는 “이를 집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칫 불법이 될 수도 있다”며 “선의로 만든 규범조차 특정 문화적 기준에 맞추라는 압력으로 작용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절한 동네’가 주는 실질적 장점

그렇다고 이런 시도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웃 간 유대감이 강한 지역사회는 실제로 여러 긍정적 효과를 보인다. 버거는 “일반적으로 공동체 결속력이 높을수록 부동산 가치가 높고 법적 분쟁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적 연계가 높은 동네는 범죄율이 낮고, 주민의 우울·불안·스트레스 수치도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사회적 교류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환경’ 자체가 주택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30% 이상이 ‘걷기 좋은(walkable)’ 커뮤니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이는 친절서약  때문이라기보다는 질서·청결·안전 등 커뮤니티가 유지하는 환경적 요인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집값을 올리는 건 행동 규범 자체가 아니라, 잔디 관리, 소음 규제, 공공시설 유지 등 커뮤니티의 질서를 지키는 요소들”이라고 설명한다.


◇친절 커뮤니티를 고려 중이라면 확인해야 할 것들

친절서약이나 유사한 규범이 있는 커뮤니티를 살펴보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1. 서약 위반 시 어떻게 되는가?

제재가 없거나 모호하다면 단순한 ‘문화적 선언’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없지만, 실제로 얼마나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고 실천하는지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

2. 실제로 집행 가능한 규정은 무엇인가?

HOA의 CC&R(약정·조건·제한)을 확인해 소음, 외관 유지, 주민 간 갈등 등 실제 규제 항목을 살펴보라.

3. 커뮤니티 설계와 시설이 교류를 촉진하는가?

산책로, 공원, 커뮤니티 센터 등 자연스러운 만남의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라. 실제 디자인이 서약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4. 현재 주민 문화는 어떤가?

기존 주민과 대화해 갈등 해결 방식, HOA의 대응, 실제 이웃 간 교류 수준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친절 서약은 ‘퍼즐의 한 조각’

결론적으로 이웃에게 친절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친절 서약은 법적 효력이 없고, 지역마다 친절함에 대한 기준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런 서약은 특정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문화적 신호 역할은 한다. 그리고 강제할 수는 없어도 이웃 간 연결이 강한 공동체가 더 높은 삶의 질과 주거 만족도를 제공한다는 점은 연구로 확인된다.

중요한 건 서약 그 자체가 아니라 커뮤니티의 설계·시설·문화가 실제로 이웃 관계를 촉진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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