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 금융사의 살아있는 역사, 고석화 회장 오늘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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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금융사의 살아있는 역사, 고석화 회장 오늘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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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고석화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뱅크오브호프 제공

<아래 사진>고석화 저 '고독한 도전,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표지. /뱅크오브호프 제공


<고석화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은퇴 특별 인터뷰>

인생 제2막 열고 싶어, 아메리칸 드림 쓰고 희망 남겼다

신이 주신 인생 소풍길, 이제 즐기며 '봉사하는 삶' 살겠다

'경천애인'과 '제행무상'은 나의 인생철학

뱅크오브호프, 미국 100대 은행 등극, 큰 보람

고인이 된 아내 고정옥 여사와 공동설립한 '고선재단'

1000만달러 이상 기금으로 큰 성장

아내는 다른 별에서 온 천사라고 믿어


◇오늘(10일) 은퇴식을 갖고 인생 제2막을 열고 싶다는 고석화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본지 경영진, 편집본부와 면담 및 전화 인터뷰, SNS 등을 통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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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요즘 실감합니다."

오늘 은퇴식을 갖는 고석화(80)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건넨 말이다. 은퇴 준비로 더 바빠진 일정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고 활기찼다. 40년간 한인 금융업계를 이끌어온 거목이 마침내 인생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

고 회장은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매일 아침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고, 기타와 탁구를 배우는 그는 "이제 소풍 온 느낌으로 여생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부산 사나이, 아메리칸 드림을 쓰다

고 명예회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중·고를 졸업한 화끈한 '부산 사나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1971년, 스물 여섯 나이로 미국 땅을 밟았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야망 만큼은 태평양보다 넓었다.

"하느님이 세상에 보내셔서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줄 위의 곡예사 같은 삶이었죠."

그의 회고처럼 초창기 미국 생활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고 회장은 퍼시픽스틸 코퍼레이션과 코스인터내셔널 코퍼레이션을 잇달아 설립하며 성공한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철강업으로 쌓은 탄탄한 사업 기반은 이후 그가 금융업계로 진출하는 든든한 발판이 됐다.


◇위기의 윌셔은행을 구하다

1986년 고 회장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윌셔은행 이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금융위기로 윌셔은행이 존폐의 기로에 섰을 때 그는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고 회장은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한인 동포들의 은행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연방중소기업청(SBA) 융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윌셔은행의 체력을 키웠다. 한인 중소기업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은행의 자산을 늘려갔다. 이는 한인 커뮤니티와 은행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모델'이 됐다. 그의 리더십 아래 윌셔은행은 점차 안정을 찾았고, 결국 2016년 역사적인 합병을 성사시킨다. 중앙은행과 나라은행이 합병해 만든 BBCN과 윌셔은행이 하나가 되면서 뱅크오브호프(Bank of Hope)가 탄생한 것이다.


◇’뱅크오브호프’로 희망을 외치다

"'희망의 은행'이라는 이름에 우리의 모든 염원을 담았습니다."

2016년 7월 출범한 뱅크오브호프는 한인은행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합병으로 고 회장은 초대 이사장에 올랐다. 총자산 130억달러, 직원 1500명, 지점 60개가 넘는 거대 은행이 탄생했다. 현재 뱅크오브호프는 미국 100대 은행 안에 드는 대형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한인이 설립하고 경영하는 은행으로는 유례없는 성과다. 고 회장은 "처음 윌셔은행 이사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많은 분들의 헌신과 한인 동포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동포사회에 감사를 전했다. 


◇두 개의 좌우명, 한 사람의 철학

고 회장은 인터뷰 내내 두 가지 좌우명을 특별히 강조했다.

첫 번째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는 "사업을 하다 보면 이익만 쫓기 쉽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직원도, 고객도, 커뮤니티도 모두 사람이다.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이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정진하라는 의미다. 고 회장은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두 좌우명은 그의 경영 철학이자 삶의 나침반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워렌 버핏, 그의 검소함에 매료돼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을 가장 존경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가이자 거대 복합기업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끄는 워렌 버핏. 고 회장이 꼽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버핏의 투자 철학도 훌륭하지만 제가 정말 감탄하는 건 그의 검소한 생활입니다. 1600억달러의 재산을 가지고도 같은 집에서 살고, 맥도날드 아침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진짜 부자는 돈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고 회장도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화려한 사무실이나 비싼 차보다는 실용을 추구했다. 요즘은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즐겨 탄다고 한다.

"앱으로 로보택시를 부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놀랍죠. 운전기사도 필요 없고, 목적지만 입력하면 알아서 데려다 줍니다. 미래가 벌써 와 있어요."

80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평생 혁신을 추구해온 기업가 정신이 엿보인다.


◇회고록 '고독한 도전,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2022년 회장은 자신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 '고독한 도전,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를 출간했다. 292쪽의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한인은행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 회장이 직접 체험하고 겪었던 한인은행의 영광과 고뇌의 기록이다.

"미주 한인은행 역사의 기록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책에는 1970년대 이민 1세대가 맨손으로 시작해 미국 100대 은행을 만들기까지의 생생한 여정이 담겨 있다. 금융위기 속에서의 고뇌, 합병 과정에서의 갈등과 조율, 그리고 성공의 기쁨까지. 회고록을 읽다 보면 한인 금융사가 단순히 숫자와 거래의 역사가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의 인간 드라마였음을 알게 된다. 고 회장은 책을 통해 후배 금융인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교훈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패도 많이 했고, 후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배움이었어요. 후배들이 제 시행착오를 보고 더 나은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천사 같았던 60년 반려자

고 회장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60년을 함께 한 부인 고정옥 여사다. 그러나 고 여사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별에서 온 천사였죠."

사업으로 바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가정을 지킨 것은 물론 커뮤니티 활동과 봉사에도 앞장섰던 고 여사. 평생 반려자 없이 맞이하는 은퇴가 더욱 숙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선재단 설립도 아내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고 회장은 “아내가 보고 싶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내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함을 바꾸다: 사업가에서 봉사자로

"40년 이상을 사업가와 은행가로 살았습니다. 이제 봉사자 명함을 준비하겠습니다."

고 회장의 이 한마디에 그의 은퇴 후 계획이 집약돼 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부왕'으로 불려왔다. 2006년 그는 500만달러를 출연해 자신의 아호인 '고선'을 딴 고선재단을 설립했다. '선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의 고선재단은 현재 보유 기금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100만달러를 기부했고, 20여 개 비영리 단체에 25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매년 수십만달러를 한인 커뮤니티에 기부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고 회장은 "재단을 '영속적 가족재단'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커뮤니티를 돕고, 장학금을 주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재단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자녀들과 함께 재단 운영을 논의하며 다음 세대로의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한인의 위상을 높이다

고 회장의 활동은 LA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는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15대 회장을 역임했다. 월드옥타는 세계 73개국 147개 도시에 지회를 둔 재외동포 최대 경제인 네트워크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제적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전 세계 흩어진 한인 기업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회장으로서 제 역할이었죠."

그의 리더십과 공헌은 한국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았다. 2023년 10월 한국 정부는 미주 한인 금융계 발전과 커뮤니티 봉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점을 인정해 고 회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고 회장은 "조국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미주 한인 전체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퇴 후의 삶: 성찰과 배움의 시간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고 회장은 은퇴 후 바쁜 일정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위도식하며 지낼 생각은 없다. 그는 자주 퍼스널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고, 기타 레슨을 받는다. 최근에는 탁구도 배우기 시작했다. 독서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들이 많다.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천천히 읽으려 한다"고 말했다. 


◇20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은퇴식

오늘 LA 옥스포드팔레스 호텔에서 고 회장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미주조선일보 이기욱 대표, 케빈 김 뱅크오브호프 행, 조병태 소네트그룹 회장, 하기환 한남체인 회장을 비롯해 한인 및 주류사회 리더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은퇴식은 단순한 송별회가 아니라 40년 한인 금융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 회장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의 리더십 아래 성장한 후배들, 그리고 그가 도왔던 수많은 커뮤니티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사와 존경을 표할 예정이다.


◇줄 위의 곡예사,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다

40년. 

한 세대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고 회장은 한인 금융업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매 결정이 수천명의 운명을 좌우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줄 위의 곡예사" 같은 삶이었다.

이제 그 곡예사가 무대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남는다. 

뱅크오브호프라는 든든한 금융기관, 고선재단을 통한 지속적인 커뮤니티 기여,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물려준 '경천애인'과 '제행무상'의 정신.

"제 인생은 축복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받은 것을 돌려주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고 회장의 제2막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곡예사가 아니라 봉사자로. 긴장이 아니라 평온으로. 성취가 아니라 성찰로.

우리는 안다. 그의 제2막 역시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구성훈 기자


<약력>

-부산 출생, 부산 중·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1년 미국으로 이민

-퍼시픽 스틸 코퍼레이션 설립

-윌셔은행 이사 및 이사장

-뱅크오프호프 설립 주도 및 초대 이사장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제 15대 회장

-LA시더스 사이나이 병원 종신이사

-고선재단 설립

-국민훈장 동백장 및 모란장 수훈

-연세대 명예경영학 박사

-회고록 ‘고독한 도전,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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