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추수감사절의 컴백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벌써 11월 말이다. 사막인 남가주에 폭우가 한 차례 지나갔고,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작년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다들 조마조마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가주 사람들은 소나기든 폭우든 비가 오면 일단 안도의 한숨부터 내쉰다. 비가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남가주는 사람 살기에 좋은 기후를 자랑하지만, 사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긴 어렵다. 겨울은 그저 가을의 연장일 뿐이고, 그런 겨울이 언제 끝나고 봄이 언제 오는지 잘 구분이 안 된다. 특히 상록수가 많은 LA는 가을철 단풍이 한계적이다. 빅베어나 세코이아, 아니면 5시간 운전을 해 비숍(Bishop)까지 가야 노란 단풍을 볼 수 있고, 북가주나 타주까지 가야 한국과 유사한 단풍 구경이 가능하다. 그래서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의 노랗고 불그레한 낙엽수에 시선이 머문다.
미국의 경우 가을의 절정기는 뭐니 뭐니 해도 추수감사절이다. 하지만, 상업성 가치가 비교적 낮기에 핼러원과 크리스마스 뒷전에 밀려있다. 상점들은 9월 중순부터 핼러원장사를 시작하고, 10월 말이 되면 확~ 크리스마스 장식과 상품으로 바꿔놓는다. 호비 로비(Hobby Lobby)같은 장식 전문점이나 터키를 판매하는 마켓을 찾지 않으면 추수감사절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갈 정도다.
그러나, 추수감사절과 이 기간을 그냥 건너 뛰어선 안 된다. 원래 추수감사절은 1621년 인디언 원주민이었던 왐파노아그 부족과 북미 플리머스 식민지에 정착한 청교도 주민들이 함께 나눈 식사가 국경일로 발전한 것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사건의 핵심은 곤경에 처한 청교들에게 왐파노아그 부족이 음식을 제공했고, 청교도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다. 차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이 전통을 기념해 1789년 국경일로 선포했고,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경일로 선포해 남북전쟁으로 갈라졌던 나라의 단결을 도모했다. 이처럼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 정치적, 인종적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크다.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1950년대~1990년대)에 비해 추수감사절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는 의미와 뜻, 건설적 참여, 공동 의식과 연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기에 그렇다. 전통을 거부했던 포스트모던 시대와 다른 반응이며,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으려는 인본주의적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종교적인 요소는 거부하지만, 타인과의 연결이 소중함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이 “컴백”하고 있다. 물론, 신세대, 그리고 특히 다민족이 거주하는 남가주의 경우 식단이 이전과 다르다. 전통적 추수감사절 식단(칠면조, 매시드 포테이토와 그레이비, 고구마와 크랜베리 소스등) 외에도 민족 음식이 식탁에 함께 얹혀진다. 코리안-아메리칸의 경우 칠면조와 함께 닭고기 요리, 김치, 갈비찜, 파전, 국, 찌게 등이 등장한다.
또, 추수감사절 다음 날,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쇼핑 이벤트도 종전과 달리 많이 수그러들었다. 물론, 아직도 꼭두새벽부터 세일 품목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으로 인해 추수감사절 세일은 11월 중순부터 시작해 12월 첫 주까지 지속되며, 붐비는 쇼핑몰을 피하고 싶은 청장년은 오히려 집에서 쇼핑을 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난다.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게 된 것은 첨단기술 때문인데, 추수감사절의 복귀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영상통화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해외에 파병된 군인이나 타주에 거주하는 대학생, 또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식구가 영상으로 서로를 보고 마음과 웃음을 공유한다. 모바일 기술 때문에 많은 부작용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 그러나 추수감사절의 컴백이 그저 식사를 같이하고, 미식축구 게임 함께 시청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 앉았을 때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 거리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한 해를 돌아보면 감사 거리가 넘침을 알 수 있다. “Thank”(감사)의 어원은 “think (생각, 회고)다. 앞만 너무 보고 뛰어왔기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추수감사절 기간엔 시간을 내어 삶을 돌아봐야 한다. 찬송가의 가사같이 받은 복을 세어봐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감사하게 된다.
물론 사는 게 쉽지 않다. 항상 웃고, 항상 기쁨만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고통과 어려움 때문에 가슴이 조여와도, 소망을 유지하고 다시 힘을 얻어 뛰는 이유는 신앙과 가족과 친지 때문이다. 그러니, 더 모이기에 힘쓰고, 모여서 함께 감사 거리를 나누고, 감사 기도도 드리며 서로를 격려하자. 추수감사절의 컴백을 환영하며, 모두 뜻깊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