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다<2> 아름답고 감동적인 설산영봉
마침내 도착한 로부체. 7000미터급 고봉 눕체봉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탕보체에서 로부체로 가는 길에 보이는 로부체 마을./
팡보체에서 로부체로 가는 오르막길. 야크 무리가 짐을 싣고 오르고 있다./ 탕보체에서 다음 숙소인 팡보체 가는 길에서 바라다 본 계곡. 폭포도 있고 단풍든 산 모습이 한국의 비선대 같은 느낌이다./ 로부체로 가는 여정, 투클라 마을에서 점심식사 후 우연히 히말라야 8000미터 급 14좌 완등기록을 가진 김재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는 하기환 고문./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산길./ 해발 3880미터 고산지대에 지어진 에베레스트 뷰 호텔. 전망대에 오르면 히말라야의 설산고봉을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 탕보체에서 출발하기 앞서 ‘찰칵’./등산로를 표시하거나 조난당해 사망한 산악인을 추모하기 위해 쌓아 올린 ‘캐른’ 이라는 돌무덤.(위에서부터)
글·사진=하기환 재미스키·스노보드협회 고문
운 좋게 '에베레스트 뷰 호텔' 예약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이 눈앞에
본격 산행 앞두고 남체서 장비구입
텡보체로 가는 두 번째 '깔딱고개'
짐 나르는 야크와 포터들 인상적
로부체 가는길은 한국 비선대 같아
'캐른', 등산로 표시나 추모 돌무덤
끝 없는 오르막길의 끝에 목적지가
호텔에서 만난 에베레스트
가이드가 예약한 숙소 방은 역시 난방이 안 되었다. 샤워 역시 복도 끝에 있는 공동 샤워장이다. 미지근한 물밖에 나오지 않아 간신히 몸을 씻었다. 이곳을 오며 좋은 호텔도 많이 보았는데 예약이 모두 끝났는가 보다. 좋지 않은 시설의 롯지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침에 가이드에게 그런 우려를 전하니 알아보겠다고 말한다. 우리 팀은 현지 파트너 네팔 사람들을 잘 만났다. 우리 팀의 살림꾼 제인 김 님과 소통한 현지 여행사 사장 너버(Never)는 신뢰할 만했다. 기상이변으로 운행이 변경되고 숙소 역시 그러했으나, 너버는 영리하고 또 성실하게 대처해 나갔다. 세상 어느 나라나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섞여 있다. 우리가 트레킹 중 인연이 된 모든 네팔 사람들은 정 많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경비 문제도 깨끗하게 처리했고 크고 작은 사고에도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했다.
숙소를 바꾸자는 제안을 받은 너버는 그 어렵다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 예약에 성공한다. 남체에서 2시간 정도 오르면 만나는 쿰중에 소재한 호텔. 쿰부 일대에서는 유일하며 제일 좋은 호텔이었는데 하루 숙박 요금이 290불이라고 했다. 더구나 이곳의 위치는 EBC 가는 길이기에 다음날 산행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원래 고산증 적응 차원에서 3,400m 남체 마을에서 하루 더 자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호텔 예약을 한 후 남체 마을 구경과 장비 구매에 나섰다. 에베레스트 관문인 이곳엔 정말 모든 등산장비가 있다. 물론 유명 상표를 도용한 짝퉁 물건들이 주종이긴 했다. 그러기에 가격은 말 할 수 없이 싼데 너무 잘 만들어서 꽤 쓸만했다. 팀원 중 대부분 거위털 바지가 없어 이곳에서 구매했다. 내일부터 급격하게 고도를 올릴 테니 방한복이 필요하다. 필요한 장비들을 많이 구매했다.
쇼핑이 끝나고 올라간 쿰중 마을은 힐러리가 세운 고등학교도 있는 꽤 큰 마을. 우리 호텔은 그 마을을 내려다보는 능선에 서 있었다. 일본인 우에노겐지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호텔. 1960년에 이곳에 온 그는 우선 경치에 반했단다. 네팔 여자와 결혼하고 오랜 시간이 걸려 1971년에 완공시켰다. EBC 트레킹 중 이곳에 투숙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 물론 이곳이 예약이 넘치는 이유는 풍경 때문이다. 에레베스트를 중심으로 한 히말라야가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위치. 기네스북에도 3,880m에 지어진 호텔이라고 친절히 설명할 정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전기장판이 한국제였다. 방엔 히터도 있고 제대로 된 샤워장을 볼 때 LA에서는 별 4개 정도쯤 시설이 되어 보인다. 가격을 비교해도 좋은 숙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전망대에 올라가니 말 그대로 주변 산세가 압도한다. 호텔을 에워싼 경치는 그야말로 별 7개를 주어도 될 것이다. 히말라야에서는 보통 아침이 날씨가 좋다. 그동안 숨어 있던 에베레스트(8,848m)가 정면으로 보인다. 그 곁에 세계 4위봉 로체(8,516m)가 서 있다. 한쪽으로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예쁘다는 아마다블람(6,812m)도 보인다. 그야말로 히말라야 파노라마. 전망대에서 보이는 360도 전체가 설산고봉들. 상쾌한 기분으로 산행에 나섰다. 오늘도 강행군이다. 호텔이 있는 쿰중 마을이 3,880m인데 내리막길 2시간 이상 걸려 3,315m로 내려서 본 트레일을 만난다. 내리막길이 쉽긴 하지만 무릎에 충격이 가 힘이 더 드는 느낌이다.
EBC로 가는 3개의 깔딱고개
계곡으로 한참 내려간 풍키텡가(PhunkeTenga·3,250m)라는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히말라야에서는 넘치는 물줄기를 이용해 물레방아로 방앗간을 만든다. 이곳에서도 수차를 만들어 불경이 적힌 나무로 만든 마니차를 돌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풍키텡가에서 이제 500m쯤 고도를 올려야 한다. EBC 가는 길에는 3대 깔딱고개가 있다. 이미 우리가 지나온 힐러리 브리지 건너 남체로 오르는 고개. 그리고 지금 풍키텡가에서 텡보체(Tengboche·3,867m) 오르는 고개. 마지막으로 투클라(Thukla·4,620m)에서 로부체(Lobuche·4,930m)로 올라서는 세 고개가 그것이다.
정말 끝도 한도 없는 오르막길. 온몸이 땀투성이에 숨도 턱에 차오른다. 물론 고소에서 걷는 일은 힘들다. 쉬고 쉬면서 겨우 고개 정상에 있는 텡보체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웅장한 티베트 사원이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니 커다란 부처상도 보이고 건축물도 대단하다. 오지 중의 오지 텡보체 높이 3,860m를 생각하면 이 건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이렇게 절을 지으려면 엄청난 건축자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거대한 불상 하나만 해도 어마한 무게일 터인데 어떻게 옮겨왔는지 불가사의하다. 헬리콥터로 옮기기엔 경비도 그렇거니와 무게도 감당이 힘들어 보인다. 이런 오지에 이런 절을 지었다는 걸 생각하니 종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이 난다.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이 절에서 축원금을 낸 후 라마 고승의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 절집 안에서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탱화를 만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정중하게 거절한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내리막길 숲속을 걸었다. 강을 건너자 이어 오름길이 시작된다. 힘이 든다. 죽을 힘을 다해 벼랑길에 올라서니 이제 순한 길이 이어졌다. 힘들 때면 주변 경치가 보이지 않는데 숨을 돌릴만 하면 사방 풍경이 눈에 든다. 강을 끼고 가는 착한 트레일 끝에 히말라야 연봉이 보인다. 멀리 에베레스트와 로체봉이 더는 못 간다는 듯 하얀 장벽처럼 막아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이 우뚝하다. 낮은 산에는 단풍이 들고 폭포가 있는 한국의 비선대 같은 풍경이다. 특히 폭포가 있는 경치는 금강산 사진과 매우 비슷했다. 강을 건너는 흔들다리에서 바라보이는 아마다블람 설산은 정말 한 폭의 수채화였다. 산 아래 단풍과 우유빛 빙하가 녹아내린 강. 모든 사물이 잘 어우러진 산수화 속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들게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
히말라야는 오후가 되면 구름이 몰려들어 날씨가 나빠진다. 오전이 날씨가 좋다는 건 그동안 경험이 알려준다. 사진을 간간이 찍으며 걷는 중 설산이 구름에 가려 숨어 버린다. 산자락에 걸친 수많은 폭포를 보며 오늘 숙소인 팡보체(Pangboche·3,930m)에 도착했다. 이곳엔 재작년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카트만두에서 만났던 엄홍길 대장이 세운 휴먼스쿨이 있다. 이 마을에서 숙소를 배정받았다. 사람 눈은 참 믿을 수 없다. 전날 묵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 비하니 너무 초라한 롯지. 다행히 방에 사워장과 변기가 있었다. 호텔에서 자지 않았다면 꽤 괜찮은 롯지였을 것이다. 롯지에 난방이 되지 않아 샤워 끝내고 몸을 닦는 동안 온몸이 떨린다. 고도를 올릴수록 추워지고 또 기압 차이가 나니, 히말라야에서는 머리도 감지 말라는 경고를 이해한다.
김재수 대장을 만나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부터 3일간은 무지 힘든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고소 산길을 올라 7시간 정도 걸려 로부체(4,910m)로 올라가야 한다. 아침 7시쯤 출발. 힘들다는 경고와는 다르게 시작은 평평한 계곡길이었다. 평탄한 길을 걸으며 만나는 설산 연봉은 정말 아름다웠고 감동적이다.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넓은 고원길이 나타난다. 눈부신 설산 아래 짐을 지고 천천히 걷고 있는 야크 무리들. 그리고 도꼬(Doko)라고 하는 대바구니에 트레커 짐을 싣고 걷는 포터들. 대바구니 도꼬는 아래가 좁고 위로 갈수록 벌어진다. 사다리꼴을 거꾸로 세운 모양.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등짐의 지혜인가 보다. 가벼운 것을 아래에 놓고 무거운 걸 위로 놓아야 등짐지기가 좋다. 또 하나 포터들은 무거운 등짐에 머리띠를 사용해 지고 다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는 야크와 노새와 포터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딩보체라는 마을 롯지에서 묵었다. 이곳은 아일랜드 픽이라는 6201m 산을 갈 수 있는 분기점의 마지막 마을이기도 했다. 산을 올라갈 수록 롯지는 열악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여 한참 걷다 보니 왼쪽 계곡 밑으론 페리체란 마을이 보였고 많은 헬기가 그곳에서 뜨고 내리곤 했다. 우리도 하산길엔 페리체를 거칠 것이다.
점심은 투클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했다. 점심을 하는 중 한국인 한 명을 만났다. 알고 보니 유명한 산악인 김재수 대장이었다. 한국인으로 히말라야에 있는 8,000m급 14좌를 모두 오른 사람은 모두 7명. 김재수 대장도 그들 중 한 명인데, 7명 중 3명은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살아남은 4명 중 한 명인 김재수 대장. 신문이나 유투브에서 본 고(故) 고미영 대장과의 인연도 눈물겨운 서사였다. 이번에는 투클라 옆에 있는 산 6,500m대 봉우리를 등반하러 온 것. 그가 현재까지 오른 히말라야 봉은 50개 정도. 참 대단한 산악인이다.
투클라부터 아주 어려운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돌산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 앞서 말한 대로 EBC에 오르는 길 3번의 깔딱고개 중 마지막이다. 마지막이 로부체에 이르는 바로 이 고개였다. 쉬엄 쉬엄 겨우 올라 선 너른 고개마루에는 캐른(cairn)이 줄지어 있다. 캐른은 산의 정상이나 등산로를 표시하기 위해 쌓아 올린 돌무더기를 말한다. 또한 산악인들이 조난 등으로 사망했을 때 추모하기 위해 쌓아 올린 돌무더기이기도 했다. 투클라 고개 정상에는 조난당한 산악인 묘비가 무척 많았다. 캐른 숫자만큼 수 많은 산악인들이 눈앞의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캐른 동판에 사진과 약력을 붙여 넣은 것도 보인다. 그중에는 한국인 이름도 많이 보였다. 산악인들이 캐른으로 남아 있지만, 그 뒷쪽 하얀 히말라야는 말 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어려운 고개를 넘어 로부체(4,910m)에 도착했다. 이곳의 롯지 중 Mother Earth란 곳에 도착하여 등산을 끝냈다. 바로 앞에 눕체(7,860m)봉이 무너질 듯 서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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