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와 인생]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JAZZ와 인생]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

웹마스터


김영균(팝 피아니스트)

 

오래전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가 살고 있었다. 자신의 첫 독주회를 열기 위해 포스터를 붙였지만, 거기엔 사실이 아닌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리스트의 제자 ○○, 피아노 독주회 개최하다.” 사실 그녀는 단 한 번도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에게 사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름 있는 스승의 후광 없이는 관객을 모으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서, 결국 양심을 속이는 광고를 내고 말았다.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가난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그보다 앞섰다. 그런데 연주회를 하루 앞둔 밤,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그리스트가 우연히 그 마을에 묵게 된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여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거짓이 들통 나면 모든 꿈이 사라질 것이 뻔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리스트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고백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다 보니 성공에 눈이 멀어 거짓말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리스트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따뜻하게 말했다. “자, 그동안 연습한 곡을 한번 들려주겠습니까?” 눈물을 머금은 채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최선을 다해 연주를 마치자 리스트는 몇 가지를 부드럽게 짚어주며 간단한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이제 당신은 나의 제자가 되었소. 오늘 내가 지도했으니, 더는 거짓이 아니지요. 내일 연주회를 마음껏 펼치시오.” 여인이 감격에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리스트가 다시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포스터에 이렇게 적으시오. ‘연주회 마지막 순서스승 리스트의 특별 연주라고.” 다음 날, 공연장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가득 찼다. 연주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여인은 그날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가인 필자 역시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위대한 스승은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품고 일으켜 세우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 쓰는 이들은 원칙보다 먼저베풂을 안다. 반대로 덕 없이 원칙만 내세우는 이는 결국 사람을 잃기 쉽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사라질 것 같던 작은 선행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곧 덕을 쌓아 보석을 모으는 일과 같다. 과연 훌륭한 음악가는 연주만 잘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진정한 음악가는사람의 마음까지 울릴 수 있는 이가 아닐까 한다. (전 수원여대 교수)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