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의 세상 읽기] 천국의 슬픔

강 정 실(문학평론가)
에릭 클랩튼(1945~)이 노래한 ‘천국의 슬픔’(Tears in Heaven)은 1991년 12월 개봉한 영화 러쉬(Rush)의 OST로 발표된 발라드곡이다. 이 노래는 한 남자의 회한(悔恨)이며 연약함의 고백서이자, 부모와 자식 사이의 끈을 되새기게 한다.
기타리스트이자 전설적인 락스타였던 그는 한때 알코올과 마약, 화려한 밤무대 속에서 방탕한 삶을 살아갔다. 그러던 중 1991년 3월, 사랑하는 네 살 난 아들 ‘코너’가 뉴욕의 한 아파트 창문에서 추락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날 이후 음악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그는 한 순간에 무기력한 아버지가 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비탄에 빠진 그는 기타를 들고 이렇게 묻는다. “천국에서 널 본다면, 넌 날 알아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비탄이 아니라 속죄의 울음이자 참회의 기도다. 이 곡은 아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을 잃은 데에 대한 통절한 후회이자, 고통 속에서도 다시 걸어가야 한다는 불안전한 인간존재임을 표현한 노래다. 노랫말에는 8번이나 ‘천국’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그가 말하는 천국이란 어딘가? 아들 코너가 평화롭게 있는 영원한 안식의 장소일 것이다. 그의 눈물이 천국에 닿아 아들을 위로했는지 알 수 없지만, 대신 이 곡은 지상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 역시 이 슬픔의 노래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반성하고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의 사랑이야말로 곧 미래의 천국을 준비하는 일임을 깨닫게 한다.
한편, 그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성공과 욕망을 좇아 가장 소중한 존재와의 진정한 연결(連結)은 잃어가고 있다.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서로의 하루를 잘 모른다. 사랑은 데이터처럼 쌓이지만 따스한 온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가족의 식탁 위에서도 각자의 휴대폰 화면이 벽이 되고, 웃음 대신 알림음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우리는 디지털기기의 화면 너머로 대화를 대신하고, 감정의 표현은 메시지 이모티콘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서로가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식들이 필요한 현금만 급히 챙겨주고는 ‘나중에 더 잘해주면 된다’고 서로가 믿지만 통상 그 ‘나중’은 쉽게 오지 않는다.
성경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고 말한다. 그렇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속도나 성취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을 통한 관계회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 눈빛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사랑은 멀리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알아보고,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바로 그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관계에서 사랑의 동아줄이 연결되어 있는가? 지금 당장 소중한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자.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잊고 있었던 사랑과 삶의 본질에 대해 가슴을 활짝 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