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추도예배는 산자를 위한 목회적 돌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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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추도예배는 산자를 위한 목회적 돌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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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자녀이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자녀와 기독교 신자 자녀 간의 갈등을 묘사한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1996)중에서


안신기 목사 (가주목양교회)

 

#. 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만남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된 지 1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앙과 한국의 전통문화는 다양한 지점에서 긴장을 경험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부딪힌 영역은 바로 제사 문제입니다. 유교적 전통에서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였고, 가정과 국가를 유지하는 윤리적 근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사 거부는 단순히 종교적 선택을 넘어 사회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기독교 신자들은 이 문제로 숱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 훨씬 세속화되었지만, 여전히제사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추도예배는 단순히 제사의 대체물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따라 새롭게 정립된 목회적 돌봄의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유교적 제사의 정신과 종교성

유교에서 효는 모든 덕의 근본입니다. 공자는효를 덕의 뿌리라 하여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원리로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곧 하늘을 공경하는 일로 이해되면서, 효는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를 사후에라도 다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며, 조상 신령이 제사상 앞에 와서 후손의 절을 받고 음식을 누리며 자손에게 복을 내려준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제사는 인간과 조상, 나아가 하늘을 연결하는 영적 행위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 기독교 신앙과 제사 거부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기독교의 예배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존재에게도 예배할 수 없습니다. 1791, 천주교 신자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제사를 거부하며 가톨릭식 장례를 치른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곧 신해박해로 이어졌고, 이후 100년간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은 수많은 순교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20세기 들어 교황청이 문화적 토착화를 인정하면서 제사의 일부 형태를 허용했으나, 개신교는 여전히 엄격했습니다. , 분향, 제사 음식 차림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추도예배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고인을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방식을 정착시켰습니다.

#. 추도예배와 예배 대상의 문제

추도예배의 본질적 고민은 예배의 대상에 관한 문제입니다. 유교적 제사는 조상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후손이 효를 다하면 조상이 신적 권위를 지니며 자손을 축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을 결코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지 않습니다. 예배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추도예배는 단순히 죽은 이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속에서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남은 자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 것을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제사와 가장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효와 산 자의 돌봄

성경은 부모 공경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6 1~3절은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부모 공경을 언급하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부모가 돌아가신 후의 형식적인 의례보다 살아 계실 때 효를 다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이러한 맥락이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9장에서 한 제자가 부친의 장례를 이유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예수는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이는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유대인의 장례 절차가 길었던 점을 고려하면, 예수는 단순히 장례 문제를 넘어 제자의 삶의 우선순위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효를 다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의례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지옥에 있던 부자가 나사로를 보내어 가족들에게 경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나타난다고 해서 신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이미 주어진 말씀과 계시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이는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신적 영향을 미치거나 축복을 내린다는 사고를 부정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조상을 신격화하는 제사는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 추도예배의 목회적 의미와 실천

그렇다면 기독교의 추도예배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 대한 예배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배의 대상은 결코 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입니다. 둘째, 고인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고인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며, 남은 가족이 그 믿음을 이어가도록 격려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 추도예배는 유족을 위한 목회적 돌봄이다. 상실의 아픔 속에 있는 가족을 위로하고, 공동체의 사랑과 기도를 경험하게 하며, 다시금 하나님께 소망을 두도록 돕는 목회적 사명입니다.

 

#. 산 자를 위한 예배

결국 기독교의 추도예배는 죽은 이를 위한 의례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조상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마음은 간직하되,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또한 추도예배는 유족을 위로하고, 남은 자들이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자리로 발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민 교회 역시, 한국적 전통과 기독교 신앙의 긴장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합니다. 단순한 문화 부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효의 정신을 성경적으로 재해석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추도예배의 참된 의미이며, 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회적 돌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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