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의 세상 읽기] 시간이 멈춘 도시

강 정 실(문학평론가)
2,000년 전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걷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기 79년 8월로 되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고만고만한 돌길과 도시 전체가 고대 로마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다. 2만 명을 수용한 원형경기장, 5천 명 규모의 극장, 공공 광장인 포룸(Forum), 황제 숭배 신전과 목욕탕까지 찬란했던 도시의 흔적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역은 비옥한 평야와 산지를 끼고 있어 농산물의 집산지로 번성했고, 로마 제정 초기에는 귀족들의 별장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약 500년의 영화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뜨거운 가스와 화산재를 동반한 화쇄류(化碎流)는 순식간에 도시를 삼켜버렸고, 사람들과 건물은 그대로 시간 속에 묻혔다. 당시 폼페이에서는 약 2,000명, 헤르쿨라네움에서는 300~5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참사는 도시를 놀라울 만큼 온전히 보존하는 계기가 되었고, 화산재 덕분에 당시 도시 구조와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이 거의 손상 없이 남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재난을 피해 도망쳤지만, 나머지는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대피를 망설이다 목숨을 잃었다.
1748년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전체 유적의 약 60%만이 발굴된 상태다. 최신 기술이 동원된 복원과 보존 작업이 병행되고 있고, 유리관 속의 석고상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관람객들은 당시 사람들의 최후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침대 위, 식탁 옆, 거리 한복판, 목욕탕 안. 누군가는 뱃속 아기를 감싸 안고 엎드린 채, 또 다른 이는 연인과 손을 맞잡은 채 죽음을 맞았다. 한 마부는 입과 코를 막고 주저앉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은 개의 석고상도 남아 있다.
삶의 한순간이 고스란히 화석처럼 남은 도시. 그것은 단지 슬프고 끔찍한 장면이 아니라,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럽다’는 진실을 묵직하게 들이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흔적들은 이상하리만치 현대적이고 친숙하다.
수세식 공동 화장실, 대형 목욕탕, 빵집, 대장간 등은 마치 지금도 사람들이 오갈 것 같은 풍경이다. 특히 ‘배티의 집(House of the Vettii)’이라 불리는 상인의 저택에는 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와 황금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비교하는 벽화도 남아 있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당시 도시가 얼마나 향락과 쾌락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준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단지 번성한 도시가 아니라, ‘삶의 쾌락’과 ‘죽음의 갑작스러움’이 공존한 공간이었다.
누가 먹고 마시며 즐기던 이 도시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 상상했을까? 성경 마태복음 24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홍수가 나기 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모두 물에 휩쓸려 갔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오늘도 이렇게 묻는다. “너는 지금 깨어 있는가?” 도시 외곽 쪽에 있는 무덤 거리를 지나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걸고 있다. 일상 속에서 쉽게 잊고 지내는 하나님의 경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