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농구의 시작과 기성세대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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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농구의 시작과 기성세대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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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젊었을 때 농구를 꽤 좋아했다. 예를 들어 대학 절친과 한 골(goal)을 1점으로 치고 100점(!)까지 1대1로 거의 매주 게임을 했다. 또 교회에 농구장이 있었기에 주일 예배 후 다른 청년들과 서너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뛰었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 최고의 놀잇거리는 운동이었다. 


1980년대 LA레이커스의 “쇼-타임”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시카고 불스 사이에 과격한 싸움이 많이 일어났다. 패싸움이 잦았고, 관중이 싸움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결국 NBA는 노골적 파울을 퇴장 및 벌금으로 엄격히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나 선수 간의 싸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수백, 수천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몇 만달러의 벌금은 큰돈이 아니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WNBA, 즉 여성 프로농구에도 남성리그와 맞먹을 정도의 격한 파울과 싸움이 빈번하다. 엎친 데 덮쳤다고 특정 백인 선수에게 다수의 흑인 선수가 집중적으로, 그리고 매우 심하게 반칙을 가해 관중은 물론, 흑인 중계자도 비난에 나섰다.  


농구란 스포츠가 왜 이렇게 과격해졌나? 농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스포츠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을 당장 금해야 한다.



농구는 1891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YMCA에서 캐나다계 미국인 체육 교육자이자 발명가, 그리고 목사였던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만들었다. 그는 복숭아를 수확할 때 사용하던 바구니를 골대(goal)로 삼아 추운 겨울철에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구상하다 농구를 만들게 되었다. 



그가 거주했던 지역의 긴 겨울은 매우 지루했고, 그 당시 젊은이들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YMCA의 감독관이 네이스미스에게 실내 스포츠를 발명하라고 지시했고, 목사였던 그는 땀을 흘리며 경쟁하되 성품 발달도 촉진할 수 있는 운동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네이스미스 목사가 농구를 개발한 목적 중 또 하나는 간접적인 신앙전파였다. 그는 “건장한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란 문화를 꿈꿔왔고, 핵심은 체력을 다져가며 도덕적 인격,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체육 교육을 통해 성품 개발(자제력, 협동심, 겸손 같은 미덕)을 유도했던 네이스미스를 비롯한 기독교 선교사들과 청소년 사역자들은 농구를 효율적인 전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장비나 넓은 공간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농구를 통해 종교적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특히 1840년대에 시작한 야구, 그리고 1860년대에 시작한 미식축구보다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스포츠이지만, 농구의 매력과 장점을 살려 선교사들이 전도에 활용한 것이 네이스미스의 비전과 잘 맞아 떨어졌다. 결국 농구는 YMCA의 광범위한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빨리 확산해 많은 젊은이가 농구, 특히 스포츠맨십을 통해 기독교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젊은이들의 신앙과 인격을 개발하고, 건설적이며 비폭력적인 자유를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구가 너무 과격해졌고, 특히 WNBA의 인종적, 폭력적 반칙은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유명한 농구 선수 찰스 바클리는 “나는 아이들의 롤모델이 아니다”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에 불과하다. 그가 원하든 안 원하든 전 세계에 수천만 명이 그를 십여 년간 방송을 통해 보아왔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MMA같이 과격하고 거친 운동에 쾌감을 느끼는 이 세대, 공급보다 수효를 탓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스포츠를 액면 그대로 보고 배우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나 코치는 매우 심각한 현상을 목격한다. 예를 들어, 풋볼을 할 때 초등학생도 터치다운을 하면 목에 칼을 긋는 몸짓을 한다. 농구의 경우 슈팅을 성공시킨 뒤 다른 팀 선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 싸울 듯이 몇 초 동안 노려본다. 야구에서 도루를 시도할 때 유격수의 발목을 야구화로 찍으려 든다. 초등학생들도 그렇게 하는데, 다 프로들이 하는 “짓”을 보고 배웠기에 그렇다. 


네이스미스 목사가 요즘 농구게임을 관람할 수 있다면 뭐라 할까?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고 따라하고 있는가? 기성세대는 지금 당장의 쾌락만 따지면 안된다.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전수하는지 책임을 느끼고 절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발 다음 세대를 기억하자.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과 책임을 묵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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