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에세이] 자살에 대한 목회적 돌봄은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은 종잇장의 미세함의 차이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川っぺりムコリッタ, Riverside Mukolitta, 2021)
안신기 목사(가주목양교회담임)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0만 명을 기준으로 보는 자살률이 2024년도에 28.3%로 14,439명이 자살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OECD 국가들의 자살률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대로라고 한다면 1시간에 1.6명이 계속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발표에 의하면 자살하는 사람들의 자살 원인에 대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37.7%), 경제생활 문제(25.9%), 육체적 질병 문제(16.3%) 순으로 비율이 높게 나타났으며 남자의 경우 경제생활 문제(32.0%), 정신적·정신과적 문제(29.6%), 육체적 질병 문제(17.3%) 순이었고, 여자의 경우 정신적·정신과적 문제(56.1%), 육체적 질병 문제(13.8%), 경제생활 문제(12.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단연 1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신과적 문제는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 등의 질병들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살 충동이 적게는 8배에서 수백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밖에 신체적 장애 문제라든지 환경적 문제(재정문제, 이별의 아픔, 폭행, 폭언) 등도 자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 급격한 사회변동과 치열한 경쟁 구도
이렇게 자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이나 치열한 경쟁 구도들을 포함한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어 이에 대한 현대인들의 적응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나 신앙인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면 당혹스럽습니다. 신앙인의 경우 그 동안 교계 안에서는 자살을 구원과 연계하여 생각해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중세교회가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고 이에 대해 개신교회들도 별 저항 없이 사용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중세교회가 이 경구를 사용한 것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용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신념들 안에 갇히게 되면 개신교회들도 자살하면 목회적 돌봄이 낯설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목회자가 장례 예식을 거부한 사례도 나타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 성경에서 바라보는 ‘자살’
성경에서는 자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자살 사례로는 사울, 사울의 부하, 아히도벨, 시므리왕, 삼손, 가룟 유다 정도입니다. 사울의 경우 자살 동기가 그의 삶에 대해 굴욕감,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였고, 가룟 유다의 경우 죄책감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삼손의 경우는 다릅니다. 삼손의 자살은 회개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자살에 대해 결코 구원론과 연결하지 않고 있으며 자살에 대해 동기만 언급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살에 대한 목회적 돌봄의 출발은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는 도그마에서부터 먼저 빠져 나와야 합니다. 자살한 사람들의 유가족 또한 목회적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자살한 가족으로 인해 수치심을 갖는 경우가 많고, 한 연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그들 역시 심각한 자살 충동이 몇 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 자살 충동자에 대한 목회적 돌봄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 역시 중요합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희망이나 살아갈 능력이 본인에게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영적 존재로 이해하기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흔히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두다가 조용히 자살을 시도한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 했으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어 더 절망하였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자살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고 할지라도 힘들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서로에게 헌신하지 않는 공동체성의 결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동생의 안위를 묻던 하나님께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이까?”라며 퉁명하게 이야기했던 가인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합니다.
#. 소망의 하나님을 놓지 않은 ‘욥’
성경 속 인물들 가운데 죽음의 위기에서도 승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욥이 그런 경우입니다. 욥은 자살할 상황이었으나 그 상황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그는 혹독한 시험과 고난의 과정을 인내로 통과하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뵙게 되었다.”(욥 42:5)라고 전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놓지 않음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을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문제 배후에서 우리를 돌아 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문제 안에도 소망이 있음을 알려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고 설득하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