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폭염시대, 시니어 건강에 ‘수분 경보’가 필요하다
임영빈
임영빈 내과 원장
기후변화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계절이 무색할 만큼 갑작스레 기온이 치솟고, LA의 한낮 체감온도는 연일 100°F를 넘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급작스러운 더위에 가장 취약한 이들은 바로 노년층이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갈증 반응이 둔해진 고령자에게는 ‘덥다’는 느낌 자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문제는 자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함정이 된다는 데 있다.
노인은 더위에 적응하는 능력이 젊은 층보다 현저히 낮다. 신체 내 수분 보유량이 줄어들고, 만성질환이나 약물복용 등으로 인해 탈수 위험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상당수 시니어는 여전히 "나는 물을 잘 안 마셔도 괜찮다"는 인식 속에 살아간다. 이처럼 무심한 일상이 무더위와 만나면, 평범한 하루가 곧 위기 상황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필자가 진료 중 만난 한 부부의 사례는 이 위험을 실감케 한다. LA 외곽에 거주하는 81세 남성과 그의 78세 아내는 각각 치매 초기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평소 절약 습관이 몸에 밴 이들 부부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고 생활했다. 처음엔 약간 덥다는 느낌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내온도는 점차 상승했고, 무더위에 무뎌진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다. 결국 아내는 체온이 104°F(40도)를 넘어서며 열사병으로 쓰러졌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집중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사례는 단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염 속 수분 부족은 노인의 건강을 은밀하게, 그러나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혼란, 어지럼증, 낙상, 저혈압,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 시작은 언제나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은 하루’에서 비롯된다. 특히 파킨슨병, 당뇨, 심부전, 신장질환 등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은 평소보다 더 세심한 수분 관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시니어에게는 하루 6~8컵, 약 1.5리터의 수분 섭취가 권장된다. 갈증을 느낄 때가 아닌, 느끼기 전에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고령자들이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니 불편하다”는 이유로, 혹은 단순히 깜빡하는 이유로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개입이다.
수분 섭취가 어렵게 느껴지는 어르신에게는 몇 가지 실용적인 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작은 물병을 늘 손에 들고 다니며 수시로 한 모금씩 마시는 습관을 들이거나, 차(보리차, 옥수수차 등)나 싱거운 국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수박, 오이, 배와 같은 수분 함량이 높은 과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소변 색깔은 수분 상태를 가늠하는 좋은 지표다. 연한 노란색이면 적절한 수분 상태지만, 짙은 노란색이나 갈색에 가까우면 수분 부족을 의심해야 한다.
정부와 지역 커뮤니티, 병원, 종교단체, 가족들은 ‘안부 전화’ 한 통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오늘 물은 몇 컵 드셨어요?”, “실내는 너무 덥지 않으세요?”라는 짧은 대화가 열사병을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하루 두 번의 수분 확인 전화, 무더위 알림 문자, 냉방 상태 점검 등의 조치가 폭염 속에서 실질적인 보호망이 될 것이다. 문의 (213) 909-9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