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소더비의 버킨백과 버섯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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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소더비의 버킨백과 버섯가죽

웹마스터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2025년 7월, 파리 소더비 경매장으로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제인 버킨이 직접 사용했던 오리지널 버킨백이 1010만달러, 한화 약 140억 원에 낙찰되며, 단일 핸드백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방은 단순히 고가의 명품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그것은 한 시대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예술적 해석이 담긴 시간의 오브제였다. 스티커 자국, 손때 묻은 손잡이, 가죽의 미세한 스크래치 하나까지도 보존된 채 경매에 오른 이 가방은, 오히려 완전하지 않기에 더욱 진실한 예술품이 되어 있었다.


버킨백은 애초에도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선 상징이었다. 실용성보다는 태도, 장식성보다는 스토리가 강조된 이 가방은 에르메스라는 장인의 기술과 제인 버킨이라는 뮤즈의 삶이 결합된 서사적 제품이었다. 특히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이 가방은 개별적 기억이자, 대중의 집단 기억으로 재해석되며 ‘소유’의 개념을 넘어서 문화적 유산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하나의 핸드백은 이제 ‘패션’을 넘어서 예술과 취향의 경계선 위에서 재정의되었다.


이 경매가 진행되던 무렵,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은 폭염과 산불, 침수와 정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일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동시에 소유의 정점과 지구의 한숨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확실한 시대는 오히려 더 확실한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욕망은 예술이든 소비든, 혹은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표현되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용히 주목받고 있는 또 하나의 럭셔리가 있다. 바로 버섯가죽(Mycelium Leather)이다. 균사체에서 자라나는 이 신소재는 동물가죽을 대체하면서도 탄소배출과 물 사용량을 현격히 줄이며, 동시에 고급스러운 질감과 독특한 촉감을 간직하고 있다. 단순한 친환경 소재를 넘어, 이는 새로운 감성과 기술, 윤리적 미학이 결합된 미래형 럭셔리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이 소재로 만든 ‘Frayme Mylo’를 한정 출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에르메스 또한 버섯가죽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고급스러움은 더 이상 희소한 천연가죽이나 장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의식있는 선택과 조용한 생명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히 소재의 변화가 아니라, 럭셔리를 구성하는 미적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버킨백과 버섯가방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개의 럭셔리지만, 모두 예술과 감성의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오래된 시간과 이야기를 품었고, 다른 하나는 자라고 숨 쉬는 생명을 감싸 안는다. 이 두 세계는 ‘사치’와 ‘윤리’, ‘기억’과 ‘가능성’, ‘과거’와 ‘미래’가 조용히 교차하는 지점에서 공존한다.


문학과 예술도 이러한 전환을 오래 전부터 예고해 왔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사치의 화려함 이면에 깃든 허무를, 바우하우스의 미학은 기능과 아름다움의 균형을 말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시선을 실물 소비의 영역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다.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지지하느냐가 새로운 미적 태도가 된 시대다.


2025년의 여름은 단지 더운 계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전과 혁신, 과거와 미래, 물질과 생명,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과 책임이 만나는 한 시점이었다. 소더비의 경매장과 실험실의 균사체,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바라보며 우리는 묻는다. 진정한 럭셔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 대답은 어쩌면 이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갖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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