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농촌계몽운동에서 동포계몽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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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시니어] 농촌계몽운동에서 동포계몽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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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미주총연합회 조광세 회장


노인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한노인회미주총연합회 조광세 회장(80). 100세 시대,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고령 사회를 선도하는 존경 받는 어르신 단체를 표방하고 있는 그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미 전역에 흩어져 있는 170여개 한인회와 연대하여 노인회 조직을 활성화 하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탁월한 활동가로서 평생을 헌신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


#. 학생운동에서 농촌계몽운동으로 

1945년생. 이른바 해방둥이였던 조회장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했다. 1964년 3.24시위를 시작으로 5.20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과 5.25난국타개학생총궐기대회를 거쳐 6.3시위에 이르기까지 한일회담은 물론 수교를 반대하는 고등학생·대학생들의 시위는 거셌다. 한마디로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그는 성동공고 시절 토목과 반장들의 모임인 ‘송죽회’를 시작으로 대학 시절에는 학보사 기자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고 한일반대 시위의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 경력이 있으면 졸업 후 야당으로 가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이었지만 조회장은 고향 금산으로 내려 가 농촌계몽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농촌은 척박했다. 당시 19%의 농촌 진학률이 말해주듯 가난 때문에 학업을 더 잇지 못하고 도회지로 나가서는 공장에 취업할 수 밖에 없던 시절, 대학을 마친 젊은이가 귀농을 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회장은 ‘재건국민운동’에 발맞춰 당시 문맹률 타파를 위한  ‘재건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또한  ‘마을금고’를 세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농협조합장도 지냈다. 


#. 이민 후에는 동포계몽운동

농촌계몽운동과 건설업을 하다 40대 늦은 나이에 이민을 오게 된 조회장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생각으로 ‘홈 클리닝’을 시작으로 악착같이 일하고 정착하여 자리를 잡았다. 특히 5번 프리웨이의 ‘REST AREA’를 낙찰 받아 성실하게 일하면서 지경을 넓혀 나갔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나니 한국에서 활동하던 ‘라이온스클럽’에서 자연스럽게 합류 제의가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한인사회의 현안들에 대하여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포사회의 결속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전국의 현직 한인회장들과의 교류에 힘썼고 김종필 국무총리가 현직이던 시절 찾아가 ‘재외동포법’의 필요성과 ‘재외동포법’ 재정 및  ‘재외동포재단’ 설립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 했다. 또한 동포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며 ‘전국현직한인회장모임’을 주도하고 ‘서남부연합회’ 재창립에도 관여했다. 그리고 마지막 봉사의 자리로 맡게 된 것이 바로 ‘대한노인회미주총연합회’인 것이다.


#. 호두 그리고 혀운동 3가지

‘사회봉사’에는 정년이 없다는 조광세 회장은 ‘조동혁 내과’ 전문의의 친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평소 먹고 싶은 것은 다 먹는다는 그도 이제는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나이다. 그런 그가 반드시 챙겨 먹는 것이 바로 ‘호두’다. 견과류 중 특히 호두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생겨 뇌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상의 이점을 제공한다. 우울증 완화, 뇌 건강 증진, 콜레스테롤 강화로 인한 염증 감소 및 심장건강 강화, 소화기 건강 증진과 암, 당뇨병 예방에도 탁월하다. 마지막으로 조회장은 치매예방을 위해 요즘 유투브를 보면서 ‘치매 완벽 봉쇄법: 혀운동 3가지’를 매일 부지런히 실천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아 독자들에게 추천했다. 어렵지 않으면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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