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별기획] 든든한 노포들 포진… 타운은 ‘K-푸드’ 메카
1963년 개업 '고려정' 첫 한인 식당
월드컵·올림픽 앞두고 기대 만발
장수 비결은 ‘기본’에 충실한 맛
‘LA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한편의 대서사시다.
1970년대 불어 닥친 이민 바람으로 한인타운은 하루가 멀다 하게 변화했다. 한인 인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거의 매일 새로운 한인업소가 간판을 달면서 한인타운의 골격이 갖춰졌다. 10년도 못돼 강산이 변할 정도로 식당, 가정용품업소에서 마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을 거느리며 상권은 확장을 거듭했다. 한인타운 상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한인들에게 고향생각이 날 때마다 한 끼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식당들이었다. 새로운 업소가 생겼다가 문을 닫는 부침이 거듭되는 요식업계에서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인타운 노포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이민생활의 한을 달래주던 한국 음식들
LA 한인타운은 미국 내 ‘코리아타운’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식당들이 즐비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한인역사박물관 민병용관장의 증언에 의하면 맨 처음 한인 밀집 지역은 제퍼슨 불러바드 지역으로 1-2개 정도의 한국식당이 있었고 올림픽가와 벌몬 부근에 식료품점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민병용관장에 의하면 LA에서 처음 생긴 한인 운영 식당은 지난 1963년에 개업한 ‘고려정’ (Korea House) 이다. 이 식당은 고(故) 리처드 김 씨가 설립했으며, 같은 해에 ‘아리랑 식당’도 문을 열었다. LA 한인 사회 초창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인 이민자들은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냄새 나는 한국음식을 마음껏 해먹지 못했고,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한국식당을 방문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에 가까웠지만 한끼 한국 음식에도 반가워 눈물짓던 시절이었다. 1969년에 엄진섭·스칼렛 부부가 올림픽 가에 ‘뉴코리아 식당’을 열었고 1971년에 정광진씨가 ‘호반’을 오픈 했다. '호반'은 타운 내 최장수 식당으로 사랑 받았으나 90년대말 운영난으로 폐업했다. 호반 자리에는 소공동순두부를 하던 지영필·경미씨 부부가 ‘조선갈비’를 열었고1978년 김인화씨 부부가 오픈한 ‘동일장’은 장수 고깃집 노포였지만 2020년 폐업했다. 1982년 개업한 ‘숯불집’도 여전히 성업 중이며 1993년 개업한 ‘고바우 한식당’도 입 선전을 통해 성업중인 노포 중 한곳이다.
#. 타운 내 최고참 식당 ‘강남회관’
현재 타운에서 영업중인 식당들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83년 이상헌씨 부부가 문을 연 ‘강남회관’이다. 처음 개업 시 주인이 아직도 운영중인 탓에 변함없고 꾸준하게 잘 운영 되는 식당으로 꼽히고 있다. ‘원조 K-푸드’의 명맥을 이어오며 지금도 성업 중이다. 강남회관의 최고 강점은 오랜 기간 운영해 왔기 때문에 대를 이어 찾는 식당이라는 점이다. ‘맛에는 절대 타협이 없다’라는 운영 철학 탓인지 “맛이 변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는 곳이다. 가족 단위 손님과 단체 손님이 유난히 많으며 필살기인 ‘백김치’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민을 오면 의례히 맨 처음 갈비 콤보를 먹었던 곳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한식+일식 퓨전으로, 갈비찜, 불고기, 돼지불고기, 해물전골, 은대구 조림, 삼계탕, 생선회, 스시류까지 다양한 메뉴가 제공됩니다. 특히 은대구 조림이 시그니처 요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내·야외 테라스형 파티오가 있고, 프라이빗 다이닝 룸도 있다. 반찬은 매일 다양한 3–4종류 제공되며, 서비스는 직원들이 오래 일해 신뢰도가 높아 정성스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 3대째 이어진 국물의 원조 ‘한밭설렁탕’
LA한인타운의 시니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한밭설렁탕은 1953년 한국에서 처음 문을 열고 1987년 미국으로 이전한 곳으로 유명하다. 코리아타운에서 수십 년간 설렁탕 전문으로 사랑 받아온 노포로 현재는 3세대가 운영 중이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는 창문이 거의 없고 형광등 조명만 있는 간결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특징으로 한국인 반 외국인 반 정도의 손님들이 찾는 노포맛집이다. 고기 기름이 걷혀진 걸죽하고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라는 평. 그냥 설렁탕이 아니라 섞음, 살코기, 양지, 내장, 우설 등 다양한 종류의 설렁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뽀얗고 깔끔한 깔끔한 뼈 육수에 얇은 고기와 당면이 들어가며, 밥과 김치, 파, 후추, 소금, 매운 양념장이 함께 제공되며 ‘설렁탕’과 ‘수육’이라는 메뉴에 집중 할 수 있는 곳이다. Time Out LA와 The Infatuation 등 매체에서 “LA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설렁탕 전문집”, “단골들 사이에서 여전히 최고의 설렁탕”이라는 평가를 내린바 있으며 Eater LA의 K‑Town 가이드에서도 아침 식사로 추천되는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로 소개된 곳이다.
#. 한국 고깃집 문화의 상징 ‘숯불집’
LA 한인타운에는 다양한 숯불구이 전문 식당들이 있다. 숯불 돼지갈비, 소양념갈비 등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으며, 블로그와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 ‘숯불집’이다. 고깃집답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소양념갈비’. 숯불집의 대표 메뉴로, 푸짐한 양과 맛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 역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 잡고 있다. 4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곳으로 Eater LA, The Infatuation, Time Out LA 등에서 ‘LA 최고의 한국 BBQ’ 중 하나로 지속 선정되었으며 현지인, 미식가,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불맛의 정석’, ‘진짜 한국 BBQ’라는 평가가 다수다. 오래된 간판과 낡은 인테리어, 연기로 자욱한 실내가 오히려 ‘진짜 한국식’ 느낌이 나서인지 유투버들 사이에서는 ‘연기와 함께 즐기는 고기’, ‘냄새까지 맛있는 집’으로 종종 불리운다.
#. 탕수육 맛집으로 소문난 중식당 ‘연경’
LA 한인타운의 대표 중식당 연경(Young King)은 대만계 화교가 운영하는 맛집이다. 그간 수많은 중식당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한인타운에서 1980년대부터 운영해 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식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이 인기 메뉴이며 대형 연회장 구조로 되어 있어 가족단위 혹은 단체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만두, 청파소고기(蒙古牛肉), 깐풍기, 깐풍새우, 볶음밥 등 한인 입맛에 맞춘 한국식 중화요리가 다양하게 제공된다. 넉넉한 양, 빠른 서빙, 합리적인 가격이 장점이며 현지인 및 단골 중심으로 ‘가성비 좋은 중식 명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동안 한인타운에서 수많은 중식당들이 사라져간 탓에 시니어들 사이에서 ‘연경’의 맛을 잊지 못해 다른 중식당을 방문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 돼지 보쌈 하면 떠오르는 ‘고바우 하우스’
LA에 여행을 오거나 이민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 그리고 든든한 한식을 먹고 싶을 때 자주 찾는 대표적 노포 맛집 ‘고바우 하우스’. 고바우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돼지고기 보쌈’이다. 1993년 개업한 노포로 보쌈, 해물파전, 김치전이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이며 보쌈으로 한타를 평정한 집, 점심시간 줄 서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내 ‘보쌈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며 ‘고바우’는 한국어로 ‘고마운 바위’를 뜻한다고. 부드럽고 담백한 수육에 겉절이 김치, 새우젓과 함께 먹는 정통식으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지만 노포만의 특성상 주차공간이 협소한 것이 유일한 흠이다. 옐프의 맛집평을 보면 ‘한타 보쌈의 교과서. 줄 서더라도 한 번은 꼭 가볼 가치가 있는 집’이라는 한줄 평이 전해져 올 정도로 인기 있는 한식당으로 애주가들이 자주 찾는 편이다.
#. 한국으로 수출된 ‘북창동 순두부’
1996년 문을 열어 현재 미국 전역 9개 이상의 지점 운영 중인 한인타운 대표 순두부 체인점으로 한국으로 수출까지 된 순두부 전문점이다. 돌솥밥에 뜨끈한 순두부 그리고 정갈한 반찬에 조기 한 마리를 서비스로 내놓고 즉석에서 계란을 풀어 먹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자체 공장에서 김치와 반찬을 공급할 정도로 균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뚝배기에 뜨겁게 담아져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따끈한 국물을 유지 하고 있다. 석쇠밥에 고소한 누룽지를 추가해 끓여 먹는 재미도 쏠쏠하며 일단 푸짐하게 한끼를 먹었다는 만족감을 선사해 주는 대표 한식당 중 한 곳이다.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성공한 순두부 전문점’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야식이나 해장, 정통 한식 뚝배기 식사로 그만이다.
이훈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