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시장 '침묵', 거리는 '함성'… 이민자들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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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시장 '침묵', 거리는 '함성'… 이민자들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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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한인 혼혈인 타일러 리씨가 다운타운 앨라미다 스트리트에서 이민자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훈구 기자


<중간>글로리아 몰리나 파크에서 스티브 강(가운데) LA한인회 이사장, 윤대중(왼쪽 세 번째) KIWA 디렉터 등이 트럼프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맨 아래>글로리나 몰리나 파크에서 열린 대규모 이민자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이민자 보호를 촉구하며 팝송 '스탠드 바이 미'를 떼창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본지 취재팀 긴박한 LA 현장 르포

자바시장은 '공포 분위기', 노동자들 '벌벌'

수천명 시청 인근 공원서 집회, 연방정부 규탄

수백명 시위대-LAPD 대치 '일촉즉발' 상황 


LA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체자 집중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나흘째인 9일에도 지속됐다. 경찰은 도심시위 양상이 점차 격해지면서 폭력성이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일부터 사흘간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총 56명이라고 NBC방송은 집계했다. LAPD는 지난 8일 LA다운타운 전체를 집회금지 구역으로 선포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과격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주방위군 300명을 다운타운에 배치해 로이발 연방청사를 보호했고, 9일에는 현역 해병대 700명을 추가로 다운타운에 투입, 연방요원들을 지원토록 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이번 시위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난하며 그의 체포를 지지한다고까지 발언해 이번 사태는 트럼프 정부와 민주당 정치인들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불체자 단속작전은 9일에도 다운타운 자바시장과 LA남부지역에서 진행됐다. 특히 자바시장 한인업체도 단속 대상이 되면서 한인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번 시위와 관련, LA한인회, LA총영사관, 일부 한인단체들은 10일 오전 11시 긴급 줌 회외를 열고 현재까지의 상황과 한인들의 안전, 주의사항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 본지 취재팀은 이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LA다운타운 일대를 둘러보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LA의 모습을 취재했다.

◇적막감 감도는 자바시장, 9일에도 연방요원들 방문

지난 6일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불체자 단속을 위해 급습한 다운타운 자바시장 내 한인 의류도매업체 ‘앰비언스 어패럴’에 본지취재팀이 도착한 시간은 9일 오전 9시30분께. 

업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매니저를 비롯한 한인 직원 3명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업체 내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영업에 지장은 없느냐”, “직원이 몇 명이나 체포됐느냐”, “몇 시쯤 연방요원들이 들이닥쳤느냐” 는 등 쏟아지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직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매니저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전혀 할 말이 없다. 나가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취재진은 앰비언스 건너편 한인업체 ‘엄지 닷컴’으로 이동했다. 이 업체 직원은 “지난 6일 연방요원들이 앰비언스를 방문해 직원 여러명을 체포해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외 들은 얘기는 없다”고 전했다. 이후 앰비언스에서 가까운 또 다른 한인업체 ‘포니테일 플러스 주니어’를 찾았다. 

이 업체 직원은 “지난 6일 오전 8시30분쯤 가게문을 열었는데 그 때 연방요원들이 앰비언스 내부에서 단속을 벌이고 있었다”며 “너무 무서웠다. 그날 오후 1시30분쯤 문을 닫고 모두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떠나려는 순간 업체 직원이 ‘따끈따끈한’ 팁을 줬다. 몇 블록 떨어진 샌피드로 홀세일 마트에 ICE 및 FBI 요원들이 들이닥쳐 불체자 단속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취재진은 샌피드로 마트를 향해 뛰었다. 샌피드로 마트는 대부분 업체가 한인소유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건물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한인 스티브 서씨를 만났다. 

서씨는 “9시쯤 왔으면 좋았을텐데. 연방요원 10여명이 건물에 와서 내부를 둘러보고 떠났다”며 “이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마트에 퍼진 후 일부 업체 직원들은 바로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당국에 체포되는 불체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단체 ‘래피드 리스판스 네트워크(RRN)’ 관계자인 MJ 비데스를 만났다. 비데스는 “연방 당국에 체포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트를 방문했다”며 “다행히 이곳에서 붙잡혀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단속의 여진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체포된 직원의 소식을 묻는 손님, 공포에 떨며 출근을 주저하는 노동자들, “또 연방요원들이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시계만 바라보는 업주들.

한때 평범한 의류업체들이 모여 활기찼던 자바시장은 트럼프 정부의 불체자 단속작전 이후 적막감이 감도는 지역으로 변했다. 

◇LA시청 인근 공원에 수천명 운집, 트럼프 정부 성토

오전 10시50분께. 취재진은 지난 주말 폭력시위로 얼룩졌던 LA시청 근처에 도착했다. 시청에서 서쪽으로 약 두어 블록 떨어진 ‘글로리아 몰리나 파크’에 수천명이 집결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취재진은 황급히 시위장소로 이동했다. 파크에는 수천명의 시민, 이민자, 비영리단체 관계자, 노조원들이 모여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곳은 이민자 사회의 절박한 외침이 울려퍼지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이민자 권익옹호 단체, 대학생, 종교계 인사, 노조지도자 등이 연달아 무대에 등장해 “인간의 권리를 짓밟는 트럼프 정부는 정당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곳에서 만난 스티브 강 LA한인회 이사장 겸 LA시 공공사업위원회 위원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트럼프 정부의 비인간적인 단속을 비판하고자 이 자리에 왔다”며 “주방위군까지 시위 현장에 투입한 것은 정말 불필요한 정치적 행위라고 본다. 이번 사태가 로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직원 5명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 윤대중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커뮤니티협력 디렉터는 “트럼프 정부가 이민자 커뮤니티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이민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무차별적 단속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LA는 오래 전부터 이민자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 도시의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 LA는 단속과 저항, 충돌이 뒤엉킨 도시로 변하고 있다. 

◇수백명 경찰과 대치, 태극기 머리띠 청년도 가세

취재진이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지난 주말 구글 웨이모 무인택시 여러 대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고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충돌한 앨라미다와 커머셜 스트리트 교차로. 

백인,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 모든 인종을 총망라한 시위자 수백명이 중무장한 LAPD경관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앨라미다 선상에 있는 연방청사 앞에 중무장한 주방위군과 군용차량들이 보였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한 흑인남성이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고 시도하자 긴장은 극에 달했고, 경관들은 방패를 앞세워 그를 밀어냈다. 

이곳에서 눈길을 끈 것은 ‘태극기 머리띠’를 두른 한인 혼혈 청년의 모습이었다. 타일러 리 라고 이름을 밝힌 이 청년은 “이민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이민자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LA는 없다. 내 아버지도 한국에서 온 이민자”라며 “지금 미국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구성훈·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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