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존중과 배려 그리고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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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존중과 배려 그리고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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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에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을 자주 생각했다. 산딸기 익어가는 오월이 오면 산딸기를 따 오셨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아버님은 아침 일을 마치고 오시며 산딸기를 따서 오셨다. 아버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걸인들을 대문까지 배웅하시며 쩔쩔매시던 모습이다.

   아버님이 걸인들을 너무 진심으로 대하셔서 우리들의 불만을 샀다. 걸인들이 식사 시간에 찾아오면, 아버님은 그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드리라고 성화였고, 그들과 마주 앉아 식사하셨다. 아버님은 걸인들을 배웅할 때 잘 섬기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굳이 겸상하시는 것도, 잘해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걸인들이 떠나면 우리 집엔 작은 언쟁이 있었다. 걸인들을 대하시는 아버님의 태동에 대한 불평을 토로했다. 걸인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일 것이라는 아버님의 논리나 그분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태도라는 주장에 반박할 말이 없었지만, 철없던 우리는 불평이 많았다.

   우리가 걸인 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면 아버님은 톨스토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걸인을 만났다. 톨스토이는 돈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한 푼도 없었다. 당황한 톨스토이는 거지의 손을 잡으며 “형제여! 내가 한 푼도 없소. 정말 미안하오.”라며 쑥스럽게 인사했다. 한 푼도 줄 수 없는 것을 미안해하며 그 마음을 전한 것이었다.

   그러자 거지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돈이 문제입니까? 저는 오늘 훨씬 더 값진 것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셨고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날 톨스토이는 존중과 배려 그리고 가슴을 거지에게 주었단다. 여러 차례 이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연합 선교 음악회를 가졌다. 음악회 수익금으로 선교 현장을 섬기는 선교 음악회였다. 음악성과 영성이 준비된 귀한 합창단들이 동참해 주었고, 여러 교회와 단체 그리고 성도님의 도움으로 풍성한 선교 음악회가 되었다. 동참했던 합창단들도 선교비를 보탰다. 빠듯한 합창단 운영비를 나누어 선교비로 주신 가슴이 느껴져서 큰 감동을 받는다.

   요즘 선교비를 주고받으며 은혜도 받고 배우기도 한다. 최근 선교비를 보내신 교회 목사님께서 선교비를 보내며 ‘많이 돕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짧은 메시지에 존중 배려 그리고 가슴이 담겨 있었다. 어느 권사님의 응원 메시지에도 큰 힘을 얻는다, 사역자를 응원하시려는 따뜻한 가슴이 담겨 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선교헌금을 보내는 시간이다. 선교헌금을 보내기 위해 예약을 하고 은행에 갈 때면 콧노래가 나온다. 선교비를 보내는 마지막 절차는 선교지 사역자에게 송금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겸손과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문장을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선교헌금을 보내는 내 마음에 존중과 배려가 담겼는가를 점검한다.

   사순절과 음악회를 결산하며 선교헌금을 보냈다. 은행 담당자와 예약하고 선교헌금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기도하며 흥분된 맘으로 기다리며 송금을 알리는 메시지를 다듬었다. “사역에 결실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좀 더 따뜻한 맘을 전하고 싶어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웠다. 무엇보다도 존중, 배려 그리고 가슴으로 선교지를 섬기게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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