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감사가 넘치는 삶이야 말로 건강의 비결”
모종태 이사장은 지금도 벤자민건축기술학교를 통한 무료 직업교육을 통해 한인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 이훈구 기자
제55대 남가주교협 모종태 이사장의 ‘감사 건강법’
올해로 91세(1934년생)인 모종태 제55대 남가주교협 이사장. 그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학교 5학년이던 1945년 8월 15일. 등교를 하면 으레 산에 나가 사역을 많이 했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갑자기 교실 밖에서 “만세!” 소리가 들려와 그때만 해도 “천황폐하 만세!”를 단체로 자주 하던 시절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일본인 교사들은 침울했지만 조선인 교사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 나갔다고 한다. 당시 골목대장이었던 모 이사장은 지체 없이 운동장으로 달려갔고 그제서야 일본이 패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 때는 여순반란사건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을 목격하였다. 해방 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조선인 80%가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20% 가량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던 시절이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찬탁·반탁 시위도 목격하였다. 공업학교를 다녔던 터라 일찌감치 집을 설계하고 짓는 일에 재능을 발견하였지만 정치에도 관심이 있어 건축과 보다는 법대를 진학했다.
#. 건축의 길로 접어들다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서울로 올라와 미8군에서 영어도 배우고 여러 가지 일들을 돕다가 미국 회사들의 일을 맡아 하게 되었다. 한때 ‘전후파사상’에 심취하여 기자 일을 하는 친구들과 사회구성론에 대한 논쟁도 벌였고 군납을 하던 명동황제 ‘이화룡’과의 인연으로 김두한과도 교류하였다고 한다. 야인시대의 멤버들을 두루 만났던 모 이사장은 주먹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정팔과 격투를 할 뻔 한 적도 있다고.
군 생활 중에는 ‘부관부’에 차출되어 이한림 장군을 모셨다. 전역 후에는 당시 워커힐 호텔을 설계했던 이들이 고교동창들인 관계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건축, 건설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굴지의 건설사인 ‘공영기업’과 연이 닿아 건축 붐을 타고 하청 일을 많이 수주받아 경험을 쌓았다. 게다가 미8군의 슬롯머신을 관리하는 일도 맡았는데 이때 미군들이 갖고 있던 잡지들에 나온 건물 사진들을 몰래 들고 나와 이를 모델로 설계하기도 했다.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가수 현인 선생의 2층 현대식 양옥도 그의 작품. 그러던 어느 날 미8군 협력업체 중심의 ‘경제인협회’를 통해 월남에 진출하게 되었다. 미군들의 장비들을 수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보다가 월남 패망 직전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빠져 나오게 된 것이 미국과의 인연이다.
#. 벤자민건축기술학교
월남에 미 정부 소속 비전투요원으로 남아 있었던 터라 마지막 수송기는 필리핀 수빅만의 미해군기지로 일단 갔다가 다시 괌의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미국 비즈니스 비자를 갖고 있었고 월남 패망으로 인해 미 청구 된 금액을 받아야 했기에 미태평양사령부와 소통 하며 보상을 받기 위해 하와이로 이주 하게 된 것이 미국 이민의 계기가 되었다. 미수금 500만 달러 중 고작 5,000달러만을 보상 받아야 했으나 좌절의 순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미국에서 건축 일을 간간이 재개 하면서 하와이 주둔 25사단의 입찰 자격도 주어졌다. 연방정부기관의 일도 수주하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로 건너 와 설립 하게 된 것이 ‘벤자민건축기술학교’다.
건축기술을 배워 제2의 인생을 설계하자는 취지의 이 학교는 18년째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과정으로는 ▲목공(carpentry) ▲배관(plumbing) ▲전기 ▲냉동 및 에어컨 ▲건축운영 등으로 나눠 강의가 개설되어 현장 경험이 풍부한 한인 건축업자들과 엔지니어, 인스펙터 등이 강사로 나서 이론과 실기를 균형 있게 강의하고 있다. 초보자를 위한 ‘핸디맨’ 과정과 기존 목수 및 목수 지망생들을 위한 ‘저니맨’ 과정으로 나뉘어 교육하고 있으며 호응도는 높다. 최근에는 건축학교의 교장 일 외에도 제55대 남가주교협의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런 그의 건강비결은 단연 ‘감사(感謝)다. 실제로 모 이사장은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잊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잘 먹지만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매사에 감사 하니 장수의 비결이 되었다고 말하는 모종태 이사장. 그는 여전한 현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