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40주년 동창회를 앞둔 소회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동창회를 갖자는 소식을 SNS로 들었다. 올가을에 뉴올리언스로 단체여행을 다녀오든지, 아니면 학교 근처에서 큰 파티를 열자는 것이었다. “아니 벌써 40주년이라고?” 1985년에 월넛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40주년이 맞다.
그런데 참여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의 풋볼팀 주전 선수였고, 육상팀에서도 삼단점프, 200미터, 그리고 투포환 종목 주전이었고, 여러 클럽의 멤버였기에 다들 나의 학창시절이 매우 즐겁고 멋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1970년대 말, 그리고 80년대 초 백인 지역의 학교는 인종차별이 극도로 심했다. 그래서 따뜻한 추억보다 상처와 아픔이 더 많다.
인종차별은 학생들 사이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교사도 대놓고 인종차별을 했다. 한 수학 선생은 반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한 뒤 내게 다가와 “칭~총, 창~총”이라 여러번 말 한 뒤, “내가 너의 나라말로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다. 모든 학생이 크게 웃고 폭소를 터트릴 때 그는 “장난이야, 이해하지?” 하며 넘어갔다. 그런데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묵묵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신고할 수 있는 제도나 규칙도 없었고, 교무실에 알려봤자 그냥 무시당했을 것이다. 흑인에게도 “N-워드”를 마음대로 사용했던 때였기에 동양인 차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11학년 때 풋볼팀 쿼터백 코치가 나에게 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짧게, 길게, 또 달리며 공을 던졌다. 지켜보던 코치는 어깨가 좋고 정확성도 뛰어나니 쿼터백으로 포지션을 바꾸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반대한 사람들은…, 다른 코치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동양인(oriental)을 쿼터백으로 세우냐며 코치의 결정을 의심했다. 그들은 나를 집중적으로 “테스트”해 보았고, 쿼터백 코치의 결정이 옳았음을 그제야 인정했다. 하지만, 나의 작은 실수에도 꼭 인종차별적 표현을 써 꼬집고 넘어갔다.
팀원들의 반대도 심했다. 패스를 잘 못하면 “눈을 떠라. 찢어진 눈으로 필드나 리시버가 안 보이냐?”라고 고함을 질렀고, 패스를 잘해도 리시버들이 잘 받았기에 고맙게 생각하라고 했다. “일본 놈(Jap), 중국 놈(chink)”으로 매일 불렸고, 한 흑인선수는 팀이 공격과 수비로 나눠 스크러미지를 할 때 “너 오늘 죽었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일부러 태클을 강하게 했다. 그리고, 쿼터백을 그만두라고 여러 번 강요했다.
풋볼팀은 시즌 시작 전 선수, 부모, 그리고 코치가 만나 대화하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임에도 여러 부모가 나를 쿼터백으로 세운 코치들의 결정에 언성을 높이며 반발했다. 그러나, 헤드코치였던 더튼(Mr. Dutton)씨는 “난 최고의 11명을 주전으로 뛰게 할 것이며, 제이슨 송은 그 중의 한 명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미팅을 후 어쩔줄 모르던 나에게 그는 “저 사람들이 틀렸음을 네가 필드에서 증명하면 된다”며 주눅들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UCLA에서 체조선수로 활약하다 부상을 당해 평생 다리에 의족을 껴 절둑거리던 그 코치는 나중에 알고 보니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달랐는지 모르겠다.
동창 중 나를 따뜻이 대해주었던 한 백인 친구가 “40주년 동창회에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며 메시지를 전해왔는지만 다른 동창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물론, 인종차별을 한 동창들을 오래전 마음으로 용서했다. 하지만, 과거가 다 잊혀지나? 아니다. 가끔, 불쑥불쑥, 그 당시의 기억이 가슴을 벌렁거리게 한다. 이전보단 덜 하지만 말이다.
인종차별은 해서도 안 되고 그냥 당해서도 안 된다. 요즘은 한국인, 그리고 동양인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백인 남성이 동양인 여성을 제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40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이민 1세와 1.5세는 자주, 매우 심하게 차별을 당했다. 하지만, 노력과 끈기와 실력을 통해 차별의 깊이와 넓이를 좁혀왔다. 헌데 그들의 노고와 희생, 헌신과 끈기를 지금 이 세대가 알까?
인종차별은 이생에서 100%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안전하고, 따뜻하고, 서로를 용납하며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 26년 전 학교를 설립해 지금까지 인종차별 없는 따뜻한 커뮤니티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해왔다. 오늘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학생을 가르치고 섬기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