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키여행, 갈 때마다 새롭고 감동적… 그래 이 맛이야!"
스위스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베르비에 스키장 정상의 아름다운 전경. 베르비에 스키장의 모굴 코스. 베르베에 스키장 정상에서 찰칵! 오른쪽부터 하기환 회장, 박수영 변호사, 론 김과 제인 김 부부. 베른 시계탑을 배경으로 일행인 박수영(왼쪽) 변호사와 제인 김씨가 포즈를 취했다. 루체른의 ‘사자상’.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지붕다리 ‘카펠교’. 스위스 융프라우산에서 가까운 인터라켄의 라우터브루넨 마을. 이탈리아의 유명관광지, 코모호수.(이상 위에서부터)
[나의 여행기] 한남체인 하기환 회장 일행 유럽 스키여행<하>
악천후 속 스키 대신 택한 스위스 관광
'시계탑' '사자상' '카펠교' 등 인상적
엄청난 크기의 베르비에 스키장에 압도
점심 거른 채 6시간 반 모굴스키 '올-인'
"온몸 뻐근해도 그런 성취감 따로 없어"
한 살 차이로 스키장 혜택 못받아 서운
동료들이 멋진 생일파티 열어줘 '감사'
융프라우행 산악기차 우리말 방송 '으쓱'
베르비에(Verbier) 스키장에서의 첫 날은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스키를 하루 쉬어야 했다. 그 대신 스위스 관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스키에 몰입했던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겠지만, 이제 나이 탓인지 그게 가능하다. 체르비니아에서의 고생 때문인지, 악천후 속에서의 스키 대신 관광을 선택한 것이다.
#. 스위스 관광-로잔, 베른, 루체른
우리는 먼저 올림픽 본부가 있는 로잔(Lausanne)에 들렀다. 일요일이라 대부분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시 유네스코가 지정한 옛도시 베른(Bern)으로 이동했다. 이 고풍스러운 도시의 상징인 시계탑 치트글로게(Zytglogge)를 찾았다. 13세기 초에 세워졌고 본래는 도시의 관문이었던 이 탑은 1405년 무렵부터 시계 장치가 설치되어 베른의 상징물이 되었다. 시계탑의 종은 600년이 넘도록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중세시대의 건축미와 정해진 시간마다 인형들이 튀어나와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우리는 루체른(Lucerne)으로 이동했다. 19세기 초인 1820~21년에 조각가 루카스 아호른(Lukas Ahorn)이 완성한 유명한 사자상(Löwendenkmal)을 만났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튈르리궁전을 지키려다 786명 모두 전사한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조각. 자연의 절벽 바위를 파서 만든 기념 조각상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찾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 조각’이라고 극찬했다. 이어서 1333년에 건설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지붕 다리인 ‘카펠교(Kapellbrücke)’에도 들렀다. 1993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후에도 여전히 이 다리는 루체른을 대표하는 명소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6시까지 이어지는 시에스타(식사 및 휴식 시간) 때문에 상점은 물론 레스토랑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점심식사도 제때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라도 들러 음식을 사려고 했지만, 그곳마저 문을 닫았다. 결국 차를 몰고 한참을 달려 주유소 편의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먹을거리를 산 뒤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 숙소는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3개의 침실이 있는 집이었다. 가정집이라 부엌시설도 갖춰져 있어 저녁식사를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 숙소는 높은 산골마을에 자리잡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작은 약수터와 맑은 공기가 상쾌했고, 밤에는 쏟아질 듯한 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호텔보다 오히려 고즈넉한 휴식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만끽할 수 있던 날이었다.
#. 스위스에서 가장 큰 베르비에 스키장
다음 날은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다. 베르비에 스키장에 도착하여 맨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메인 케이블카를 탔는데 끝없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곤돌라와 리프트를 여러 번 갈아타고 나서야 정상 근처까지 도착했다. 거의 한 시간이나 걸릴 만큼 긴 거리였다. 정상 가까운 곳에 트램이 도착하면서 드디어 스키가 시작되었다.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모굴 코스에 뛰어들었다가 거의 탈진할 뻔했다. 이 스키장은 LA에서 가까운 맘모스 스키장의 여덟 배 규모라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스위스에서도 가장 큰 스키장 중 하나라고 했다. 자주 올 곳이 아니기에 스키장을 다 둘러보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6시간 반을 쉬지 않고 스키를 탔으나, 결국 절반 정도밖에 둘러보지 못했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이 스키장에서는 1947년생부터 시니어 할인이 적용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1948년생이라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우리가 즐겨찾는 콜로라도 스키장에서 많이 통용되는 에픽패스로도 무료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 해 차이로 혜택을 받지 못한 올해 방문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즐거운 스키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온몸에 뻐근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아래 마을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함께 할 때 고된 하루가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같이 간 일행이 생일이라고 파티를 열어주어 고마웠던 저녁이었다.
#. 융프라우와 코모호수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스키장 베르비에를 뒤로하고 우리는 인터라켄으로 이동하여 융프라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산을 오르는 기차 티켓 가격만 무려 220유로에 달했다. 이는 서울과 부산을 대여섯 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청명한 날씨와 그림 같은 알프스 풍경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해 주었다. 유명한 아이거(Eiger)산을 오르는 최신형 트램과 산악기차를 번갈아 탑승하는 값진 경험은 무척 즐거웠다. 이 산악철도는 1890년대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산악기차가 산을 관통하는 터널은 얼마나 대단한 기술의 산물인지 새삼 놀라웠다.
해발 3,450미터가 넘는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역 전망대에 올라가 빙하를 구경하고 직접 걸어보았다. 평소에는 괜찮았던 고소증세가 슬그머니 찾아와 속이 살짝 울렁거리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기차 안내방송조차 영어 뒤에 한국어가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긴 마지막 역인 융프라우요흐역 전망대는 무려 3,454미터 높이인데, 신라면에서 만든 컵라면을 판매하여 큰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다음 날 인터라켄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던 중 상점에 전시된 그림엽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엽서에 나온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 폭포를 만나러 차를 달렸다. 정말 엽서에서 보던 것과 같은 아름다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해발 2,970미터 높이의 슐트호른 피츠 글로리아(Schilthorn Piz Gloria)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등 200여 개의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슐트호른. 곤돌라 티켓이 108유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220유로에 달하는
융프라우요흐 역보다 훨씬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곳은 사람도 많지 않아 스키와 관광을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다시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의 유명 관광지인 코모호수(Lake Como)에 도착했다.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힐튼호텔에서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긴 후 밀라노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공항에 있는 쉐라톤호텔이었는데, 교통이 편리하여 추천할 만한 곳이었다. 이탈리아는 수많은 명품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다음 날은 밀라노에서 유명한 팩토리 아울렛(Factory Outlet)에 가서 명품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가격도 미국과 비슷하게 비싸고, 크게 추천할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후에는 두오모 성당에 다시 들러 내부를 관람했다. 성당 근처에는 맛집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도 소문난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 마지막 저녁식사를 즐겼다.
다음 날 스위스 취리히(Zurich)를 거쳐 LA로 무사히 돌아왔다. 스키와 더불어 관광을 겸한 유럽여행은 갈 때마다 항상 새롭고 감동적으로 다가선다. 유럽 스키여행이 끝나고 귀국하면 바로 스키협회 20여명과 함께 캐나다 휘슬러 스키장으로 트립이 예정돼 있다. 백투백 스키여행을 계속 진행하려니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행복한 일이니 기쁘게 계속할 수밖에. 이 여행기는 함께 동행한 박수영 변호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글을 마치며, 전 여정을 운전해 주신 론 김 사장님과 여행 일정의 모든 것을 예약해 주신 제인 김 씨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