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자 전락 한국계 입양인들 추방위험 직면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미국 모처에서 불체자 단속을 실시하는 모습. /AP
가주 한인불체자 5만5000명 추산
병원도, 학교도 못가고 숨죽여
이민자 단체들 "최악상황 대비"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불법체류자(이하 불체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본격화한 가운데 한국계 입양아들 사이에서 체포 후 강제출국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A데일리뉴스는 지난 29일 남가주 아시아계 주민들 사이에서 불체자 추방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고 보도하며, 불체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한국계 입양인 실태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신문은 이민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오랫동안 미국-멕시코 국경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지만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는 불체자 신분이 사회 낙인을 동반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숨긴 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십년 전 난민으로 입국한 사람부터 체류비자 만료로 불법체류 상태에 놓인 사람까지 아시아계의 불법 체류 경로는 다양하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과 이유로 불체자가 됐고 추방위기 속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살고 있다.
부에나파크에 위치한 아리 법률지원센터(Ahri Legal Aid Center)에서 주로 한인들을 대상으로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이민변호사 제니 선은 “가주에는 약 56만명의 한인이민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약 5만5000명은 불체자로 추정된다”며 “불체자들의 추방 준비부터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후견인 설정 등 모든 법적 절차를 진행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 변호사는 특히 한국계 입양인 중 상당수가 불법체류 상태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입양아들이 단기비자(관광 비자나 의료 비자 등)를 받고 미국에 입국했으나 입양부모들이 시민권 취득 절차를 완료하지 않으면서 불법체류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한인들이 교회에서 조차 체류신분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며 “이민자 커뮤니티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LA한인타운에서는 지난 1월 이민자들과 지지자들이 임마누엘 장로교회에서 촛불집회와 법률워크숍을 개최했다. 주최측은 이민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을 경우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어떤 서류에도 서명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이민자 권리를 담은 '레드카드'를 배포했다.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에 따르면 LA, 오렌지,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 샌디에이고 등 남가주 5개 카운티에는 약 26만1000명의 불법체류 아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기관은 이민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 단체로 불체자를 포함한 이민자들이 미국 태생 시민보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미국 태생자에 비해 수감될 확률이 60% 낮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현재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시아계 불체자를 지원하는 'OC아시아·태평양 아일랜더 커뮤니티연합'은 "사회 낙인과 모범 소수민족이라는 고정 관념의 압박 때문에 많은 불체자들이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린다”며 “병원에 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심지어는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는 것 조차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태평양 법학저널'에 따르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강력한 불체자 단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특히 연방 이민정책이 점차 강경화됨에 따라 아시아계 불체자에 대한 추방 우려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미정 기자 la@chosun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