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두뇌들 "연구비 눈치 안 주는 유럽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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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두뇌들 "연구비 눈치 안 주는 유럽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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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예산 및 연구 인력 삭감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과학을 위한 집회'에서 행진하고 있다./AP 

 

 


트럼프 행정부 '과학자 홀대'

연구원 감원에 대탈출 조짐 

 

 


 

 “요즘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연락이 매일같이 옵니다. 미국에 간 유럽 출신뿐만 아니라 미국인 과학자들까지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생의학 연구소로꼽히는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야스멘 벨카이드 소장의 말이다. 그는 프랑스 경제 일간지 라트리뷴에 “미국에선 더 이상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슬픈 현실이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했다.


미국 내 과학자들의 ‘대탈출’조짐에 유럽 대학과 연구 기관들이 발 빠르게 인재 유치에 나섰다고 영국과 프랑스 매체들이 25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부 효율화’ 및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퇴출’ 기조에 수천 명의 연구자가 해고되거나 연구비가 끊기는 처지가 되자, 유럽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국보다 먼저 우수 인재를 확보하려는 유럽 국가 간 정책 경쟁도 시작됐다.

 

벨기에 국립 브뤼셀 자유 대학교(VUB)는 최근 해외 과학 연구자를위한 박사후연구원(박사 과정을 마치고 전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 과정 12개를 신설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실상 미국인 학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 대학교 얀 단카르트 총장은 “미국 대학과 학자들이 정치적·이념적 간섭으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빼앗기고 있다”며 “그들을 돕는 것은 우리 유럽인의 의무”라고 했다.


VUB는 최근 미국 내 연구 기관들과 두 개의 사회과학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두 연구 모두 ‘정책 우선순위 변경’을 이유로 지원이 취소됐다. VUB는 이 연구를 구제하는 방안을 찾는과정에서 미국 내 과학자들의 유럽 이주 수요를 확인하고 인재 유치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의 엑스-마르세유 국립대는 아예 영어로 ‘과학의 안식처(Safe Place for Science)’라고 이름 붙인 미국 출신 과학자 영입 프로그램을 지난 19일 내놨다. 안내홈페이지에는 “연구에 위협과 방해를 느끼는 미국인 과학자들을 환영한다”고까지 써놨다. 15명 내외를 받아들여 앞으로 3년간 최대 1500만 유로를 지원한다.


이 과정에는 벌써 100여 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NASA(미 항공우주국)와 스탠퍼드대 등 우주항공 및 IT(정보기술)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세계 최고 기관 소속도 있다. 에릭 베르통 총장은 “지금도 매일 10건의 지원서가 접수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일종의 ‘과학적 망명’을 제공하는 셈”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 과학 인재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유럽 국가 간 경쟁이 불붙는 모습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일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한 기금을 긴급 출범시키기로 했다. 에포 브뢰인스 교육부 장관은 “지정학적 환경 변화로 인한 과학자들의 국제적 이동이 늘고 있다”며 “여러 유럽 국가가 이에 적극 대응하는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그 선봉에 서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는 국립보건원(NI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 NASA, 국립과학재단(NSF) 등 주요 과학 연구 기관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급격하게 줄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방만한 예산 씀씀이를 줄인다는 명분이나, 실제로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유행병 연구 등 트럼프와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분야와 이른바 ‘돈이 안 되는’ 기초 과학 연구 예산을 일방적으로 잘라내는 것으로 풀이됐다. 


유럽에선 미국 과학자들의 대탈출을 안보 뿐 아니라 학문과 과학 분야에서도 미국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삼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독일 과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갔기 때문”이라며 “이제 지난 수십 년간 벌어졌던 ‘대서양 횡단 인재 유출’을 역전시킬 수 있는 입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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