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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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칼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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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철 목사(나성 순복음교회 담임)

 

   루마니아의 존경받는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는 1948년 공산주의자들에게 잡혀 15년간 감옥에서 고문과 고통을 당했다. 처음 3년은 햇빛도 없는 지하 감옥 독방에 갇혀 지냈다. 짐승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범브란트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서 수프에 매일 마약성분을 탔고 그는 점점 성경 내용도 잊어버릴 만큼 기억이 희미해졌다.

   하루는 주기도문을 외우는데 첫 문장 다음부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서글펐지만, 그는 자세를 바로하고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가 지금 주님의 기도문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제 마음을 아시죠?” 그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던 어느 날 갑자기 주기도문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주기도문을 올려드리자, 하나님 나라가 임했고 그의 메말랐던 심령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회복한 그는 고문과 매질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 대상이 응답을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호칭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아람어로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친근하게 부르는 ‘아빠’, 영어로 Daddy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불경죄를 범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까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 죄를 징계하시는 분, 근엄하시고 무서운 분으로 생각해서 감히 “야훼(여호와)”라고 직접 부르지도 못하고. 자음의 소리만 가지고 ‘아도나이’라고 불러올 정도였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단 한 번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덮어쓰시고 죽으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다 “아빠 아버지”라고 했다.

   성서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말하기를 ‘많은 유대 문헌을 연구, 검토해 보면 예수님 당시까지 하나님을 아버지(Abba)라고 부른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신 분도 없었다.’라고 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은 어디나 계시는 무소 부재의 하나님이란 의미이다.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하고 특별한 장소로 갈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신 아버지란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시다. 그래서 모든 것에 지혜와 능력에 다함이 없는 전능자이시기에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신다. 때론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거나 억울한 경우를 만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믿고 기도하므로 마지막 시대를 이기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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