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진인사대천명'과 'Thy Will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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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진인사대천명'과 'Thy Will Be Done'

웹마스터

김미향(Cecily Kim Oh)  

오클렘그룹 대표


최근 한 모임에서 존경하는 분이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말을 하셨다. 여러 순서가 진행되며 집중력이 흐려지던 순간에도 그 말은 귀에 깊이 박혔다. 이 문구는 내게 낯설지 않다. 2019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평생 수도 없이 내게 말씀해 주신 말이기도 한 탓이다. 평소 한자나 고사성어에 관심이 크지 않던 나조차도 기억할 정도로, 아버지의 삶을 지탱한 핵심적인 철학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개화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 태어나 한국전쟁과 사회적 격동기를 거치며 교육을 받으셨고, 월남전에 참전한 뒤 사회생활을 하셨다. 여러 도전 속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이셨고,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비관하지 않으셨으며, 자연과 예술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으며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가셨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로 인생을 대하셨던 그 근원이 무엇인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동양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신앙의 결합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무의식 속에서 강하게 떠오른 또 하나의 문장이 있다. 바로 주기도문의 한 구절,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나는 생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이민자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왔다. 코로나 팬데믹 같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돌아보니, 바로 이 두 문장에 대한 믿음이 내 삶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시대 명 재상 서희가 강조했던 '진인사대천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후에는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능동적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구절은, 인간이 신의 뜻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성한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이 두 개념은 문화적 배경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르침을 공유하고 있다.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다. 때로는 성공을 거두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실패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정 자체의 의미이며, 궁극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그것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인생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단순히 운명에 맡긴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사셨다.


나도 그러한 태도를 잊지 않으려 한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지며 그 안에서 진정한 평온을 찾는 것.

'진인사대천명.'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이 두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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