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역사의 법정에 선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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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역사의 법정에 선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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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강대국 오스트리아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그보다 20여 년 전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1891년 5월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제국 황태자 니콜라이를 경호하던 쓰다 산조가 황태자를 일본도로 내리친 것이다. 그렇지만 쓰다는 현장에서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니콜라이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일본 열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군사 강국 러시아가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을 침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본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쓰다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사법부를 닦달했고,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도 제 나라가 침략당하는 것은 두려웠던지 ‘쓰다를 사형에 처하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당시 일본 형법은 일반인에 대한 살인미수죄에는 무기징역을 최고형으로 규정하고, 천황이나 황족에 대한 살인미수 행위에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여기의 황족에 외국의 황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와 판례의 통설이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에 대한 살인미수를 사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사법부 수장인 대심원장 고지마 고레가타(兒島惟謙)는 고민에 빠졌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따를 것인가,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그 엄중한 상황에서 고지마는 결단을 내린다. 쓰다에게 황족 살인미수죄가 아닌 일반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형이 선고되도록 재판을 이끈 것이다. 당연히 고지마를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그는 결국 사임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는 일본 법원의 판결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이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13년 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고지마는 ‘러시아에 맞서 나라의 주권과 사법의 독립을 지킨 호법신(護法神)’으로 추앙받는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헌법 제103조). 양심(conscience)은 공동체성을 나타내는 con(함께)과 이성을 뜻하는 scientia(앎)의 합성어다. 양심은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 공동체적 이성이라는 의미다. 헌법은 모든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제19조)하지만, 그 양심과 법관의 양심은 같지 않다. 앞엣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주관적·인격적인 것이고, 뒤엣것은 재판의 준거로 객관적·규범적인 것이다. 법관의 양심은 사회공동체의 이성적 윤리의식과 합치되어야 한다. 법정은 법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펼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운명이 트럼프-푸틴 두 강자의 뜻에 휘둘리는 상황이고, 북한 김정은에게 호의적인 트럼프가 어떤 뜻밖의 행보로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울지도 걱정스럽다. 그런데도 한국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갇혀 국제사회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치 현안을 정치권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모조리 사법부에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 법의 문제를 법의 정신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쁜 ‘사법의 정치화’가 지금처럼 나라를 어둡게 한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무엇엔가 쫓기듯 대통령 탄핵심판을 서두르고, 여러 법정에 소환된 야당대표의 형사재판이 갖가지 사유로 늦춰지는 중인데, 다음 대통령 자리에 군침을 흘리는 정치꾼들이 나라의 짙은 혼돈 속에서도 표 얻을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뒷날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가 된 니콜라이는 러일전쟁 패배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치면서 퇴위와 망명 등 모질고 험난한 삶을 살다가 가족과 함께 볼셰비키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렇지만 대심원장 고지마는 피고인 쓰다의 목숨을 살렸을 뿐 아니라 일본 사법제도에 튼실한 토대를 놓음으로써 법의 정신까지 살려냈다. 매국노라고 비난받던 고지마는 역사의 법정에 ‘호법신’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새겨넣었다. 정치적 강압에 굴복할 것인지, 법의 정신을 살릴 것인지… 3‧1절도 벌써 106주년인데, 일본 사법을 넘어서야 할 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역사의 법정에 위태롭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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