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사순절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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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칼럼] 사순절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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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옥 목사

미라클교회

 

기독교에서는 돌아오는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 부릅니다. 모든 교회들이 이 날을 기점으로 사순절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 일 동안 금식하신 것(마태복음 4:2, 누가복음 4:2)을 본받아, 초기 교회 성도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일정 기간 금식하는 영적 관습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사순절의 컨셉은 초대 교회부터 있었던, 여러 영적 훈련과 관습과 관련이 있으며, 니케아 종교회의 (325 )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이 40 일로 정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4 세기 후반에는 로마, 안디옥,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등 주요 교회에서 사순절을 지켰고, 어거스틴 (354430)도 사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기간 동안 회개와 금식, 기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을 맞는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사랑, 구원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과하는 귀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절기와 예식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절기와 전례 자체를 지나치게 신성화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오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절기와 전례가 지닌 근본적인 정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체포, 구금, 모욕, 고문, 십자가 처형이라는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하였을까?”라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1959 년에 쿠바 혁명을 성공한 후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하고, 볼리비아 내전에 뛰어들었다가 처형당했던 체 게바라(Che Guevara)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체포, 구금, 모욕, 고문, 처형을 당했으니 유사한 경우가 아닌가? 하며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죽음의 과정이 있었으나 우리는 최종적 방향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전과 혁명에는 반드시 적을 규정해야 합니다. 또한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독재, 불가피한 파괴, 불가피한 살인을 허용하게 됩니다.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체 게바라도 무자비한 처형과 억압을 실행하고, 소련과 중국의 독재 체제를 옹호하였기에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혁명은 적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혁명은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불가피한 종, 스스로 불가피한 자기 부인을 허용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너무나도 쉽게 적을 규정하고, 독재와 파괴, 전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차이들도 존재하지만, 많은 나라들이 직간접의 이러한 영향권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극단적 행위들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확대하는 흑색 프로파간다의 세력들이 도처에 암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냉전의 시대가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의 삶의 전방위에 걸쳐서, 마치 비극적으로 온 지면을 하얗게 덮는 백린탄(白燐彈, White Phosphorus)처럼 우리들의 생각, 사고, 감정, 문화, 시대정신, 영혼의 모든 영역에 압도적으로 내려 앉고 있는 형국이기에 심각한 우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순절을 출발하면서 프로파간다에 의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에 종속된 오염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종으로, 스스로 자기 부인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행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서 구원을 위한 십자가, 사람과 생명과 영혼을 살리는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더욱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수선한 고국의 상황과 미국과 지정학적 갈등 중에 있는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체포, 구금, 모욕, 고문, 처형은 사라지고, 회복, 구원, 생명이 풍성하게 도래하는 은총의 계절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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