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개미 구멍이 ‘댐’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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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연말엔 왠지 좀 들 떠 있었던 것 같다. 일년 열두달을 달려 오느라 긴장했던 끈이 느슨하게 풀려서일까?
사소한 실수는 느슨하고 들떠 있을 때 발생한다.
새해의 계획을 세운지 엊그제였는데 훌쩍 한 달 반이 지났다. 새해에 ‘작심(作心)’했던 일이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별로 진척이 없다면, 생각도 행동도 조급해진다. “조급할수록 기본에 충실하라” 했는데, 우리는 왕왕 기본을 무시하고 전진일로로 달려 나갈 때가 많다. 되돌아 복기(復棋)할 여유도 없으니 대충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바로 이런 것이 문제다. 작은 실수가 모여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말, 연초를 지나면서 지구촌 여기저기서 끔찍한 항공사고와 대형화재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인리히’는 미국 여행자보험회사(Travelers Insurance Co.)의 직원이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그는 산업재해의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려면, 그 이전에 경미한 사고가 29건이 발생했고, 또 그 이전엔 비슷한 징후가 적어도 300번이 있었다는 통계적 분석이다. 이것을 ‘하인리히 법칙’ 또는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대형사고는 발생하기 전에 이미 경미한 여러 사고 징후들이 있었지만, 사소한 것이라고 그냥 간과했기
때문에 결국엔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는 것이다.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많은 조짐들이 나타난다. 미물(微物)들은 그 조짐을 느끼고 미리 대피하지만, 사람은 그 조짐을 무시하다가 큰 재앙을 당한다.
항공기는 그 자체 무게만으로도 대단히 무겁다. 그 무게에다 목적지까지의 비행거리에 소요되는 연료를
주입하고, 승객과 화물을 탑재하니 엄청난 무게가 공중에 떠서 비행하는 셈이다.
공중(空中)은 공기와 구름뿐이다. 공기는 바람(風)으로, 구름은 천둥, 번개(落雷)를 동반하니 위험하지만,
항공기는 안전비행을 위해 여러 기능의 안전장치와 사전 위험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항공기는 100% 예방정비를 한다. 비행시간에 따라서, 착륙횟수에 따라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이·착륙
전후 체크, 주간별, 월별 체크 등 정비와 수리는 메뉴얼대로 사전에 정비하고, 감독관의 확인을 받는다.
조종사는 수시로 본인의 건강체크와 비행훈련, 이·착륙훈련, 비상상황 대처훈련, 교신훈련 등의 경험을
쌓고, 항공법규와 지식을 갖춘 전문가이다. 항상 출발전에는 목적지까지의 기상정보,항공기 정비상태, 기내 탑재상황 등의 보고를 받는다. 지상의 공항관제소는 항공기들의 공중충돌이나 지상충돌 방지를 위해 숙련된 관제사들이 교신을 통해 조종사들과 소통하면서 항상 안전한 방향으로 이륙과 착륙, 항로(하늘길)를 유도하고 있다. 연방항공국(FAA)은 항공기의 개발, 제조에서부터 기체정비, 운항허가, 비행시간, 조종사의 자격, 관제상황 등 항공기의 안전을 감독. 관리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렇게 각 분야별로 철두철미하게 안전을 도모하지만, 그런데도 때때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주 작은
실수들이 모여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것이 현실이다. 항공사고는 드물지만, 사고가 발생했다 하면 극적인
대형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다.
지난 12월에는 ‘제주항공’ 소속의 ‘보잉 B737기’가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중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해 동체착륙을 시도했지만 활주로를 벗어나 공항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방벽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참사가 있었다. 동체 후미에 있었던 승무원 2명만 생존했으나, 179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새해 들어 지난 1월 말께는 ‘아메리칸 이글’ 항공 소속인 ‘보바디어 CRJ700기’가 위싱턴 내셔널공항에 착륙 도중, 인근의 포토맥강 상공에서 육군 항공대 소속 헬기(UH-60: Black Hawk)와 공중 충돌하여 두 기체 모두 강으로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다. 여객기에는 64명이 탑승했고, 헬기엔 승무원 3명이 탑승해 모종의 훈련을 실시하던 중이었다.
엊그제(2월 17일)에는 캐나다에서 델타항공 여객기가 토론토 ‘피어슨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눈밭 활주로에서 항공기가 뒤집히는 괴이한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탑승자 80명 중,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연방정부의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원인 규명을 위해 항공기의 ‘블랙박스(Black Box)’
회수에 총력을 기울인다. 블랙박스는 비행기록(FDR) 장치와 조종실녹음(CVR) 장치가 들어있는 금속박스다.
통칭 블랙박스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찾기 쉽도록 오랜지색을 띠고 있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에 의하면, 항공사고는 거의 80%가 착륙과 이륙 직전, 직후, 혹은 도중에 발생하며,
사고 원인별 분포는 (1)조종사 과실: 53%, (2)엔진/기체 결함: 21%, (3)기상악화: 11%, (4)지상관제 과실: 8%, (5)테러: 6%, (6)기타: 1%로 발표하고 있다. 조종사와 괸제사의 과실(Mistake), 즉 사람의 실수가 60%를 넘는다.
실수의 첫 번째 이유는 ‘작다’는 생각, 즉 사소한 일을 소홀히 혹은 무시하고 넘어가는 태도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실수를 ‘재검(Review)’ 하는 프로세스를 따로 정해 두지 않기 때문에 재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미 구멍이 댐을 무너뜨린다” 라는 말이 있다. 최근 LA의 대형화재도 초기에 작은 불씨를 진압했더라면 그렇게 넓게 번지지는 않았을텐데!
성경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