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슬퍼하는 자, 영원히 슬플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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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슬퍼하는 자, 영원히 슬플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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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운명인 듯 슬픈 시심(詩心)을 끌어안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애잔한 시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 모를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고 짤막한 삶을 거둔 조선 청년, 식민지 지식인의 피 끓는 저항의식과 실존의 내면을 울리는 윤리의식 사이에서 방황하던 해맑은 영혼… 가슴에 총칼을 품고 독립투쟁에 나아간 적도, 침략국 일본을 꾸짖는 격문 한 줄도 지은 적 없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20대 청춘… 오는 16일은 짧은 삶에 영원의 무게를 담은 윤동주 시인의 80주기(週忌) 되는 날이다. 


대륙의 벌판을 말 달리던 독립군이 아니었지만 정직한 그의 역사의식은 겨레의 수난을 민초(民草)들과 함께 아파했고, 외딴 골방 속 철학도가 아니었지만 그의 시어(詩語)들은 깊은 고독과 성찰을 헤집고 나왔다. 제단 앞에 우뚝 선 성직자가 아니었어도 그의 독백은 참회의 영성(靈性)을 그윽이 품었으며, 이념에 목마른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는 언제나 ‘시대처럼 올 아침’과 ‘나팔소리 들려올 새벽’을 은밀히 꿈꾸고 있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팔복’) 크리스천이면서도 제도종교의 교리에서 자유로웠던 시인은 ‘슬피 우는 자에게 위로를…’이라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슬피 우는 자에게 영원한 슬픔을…’이라는 역설로 뒤집어 읊었다. 자신과 겨레에게 닥쳐온 슬픔을 도무지 받아들일 길이 없었던 젊은 시인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슬픔을 도리어 복으로 뒤집었던 것일까? 


슬픔은 복 받는 조건이 아니었다. 슬픔은 그 자체가 복이었다. 제국주의 총칼 아래 민족혼과 자유혼을 짓밟힌 시인의 슬픔은 그저 슬퍼하는 것 외에는 달리 위로받을 길 없는 숨 막히는 각혈이었고, 그 각혈은 그대로 곧 은총이었다. 슬퍼하는 것만이 시인에게 남겨진 오직 하나의 자유였기에… 사랑을 고백할 단 한 사람의 여인도, 영혼의 내출혈을 토해낼 단 한 뼘의 자리도 갖지 못했던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두고 일제의 감옥에서 독극물로 의심되는 수상한 주사를 맞고 스물여덟 해의 짧은 삶을 거둔다. 


제국주의만이 폭력체제가 아니다. 탐욕과 거짓의 정치권력, 비판 없는 사회적·문화적·종교적 권위들도 독선과 도그마의 칼을 휘두르고 있는 한 본질상 폭력일 수밖에 없다. 들뜨고 헤픈 집단감성의 충동으로 이성의 분별력을 마비시키는 포퓰리즘의 선동세력, 약자와 소외계층의 눈물로 탐욕의 허기를 채우는 시장권력,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교육을 정치투쟁의 제물로 삼는 교육권력, 삶의 다양한 가치를 폐쇄적 신조 속에 옭아매는 종교권력 따위들은 시인이 온몸으로 저항해 마지않던 제국주의적 폭력에서 멀지 않다. 


꿈결에도 못내 그리던 독립의 날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애통하게 숨을 거둔 윤 시인은 가슴 뛰는 광복 80년의 역사를 분열과 상쟁으로 더럽혀온 이 땅을 굽어보며 또 어떤 고뇌에 잠겨 있을까? 굶주린 인민들이 절대권력의 우상 앞에 대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북녘땅을, ‘열린 보수’와 ‘따뜻한 진보’를 알지 못하는 외눈박이 광신도들의 싸움터가 된 남녘땅을, 이념적·지역적으로 갈가리 찢긴 민족공동체를, 그 욕된 우리네의 삶을 시인은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참회록’) 시인의 탄식은 그대로 우리의 서러운 고백이다. 


구속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형사재판과 탄핵 심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쪽으로 갈라진 민심과 군중시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전복과 파괴의 이데올로기, 젊은 세대와 가난한 이들의 좌절과 울분을 들쑤셔 정파의 이익을 낚아채는 선동의 바람몰이… 이 역겨운 현실이 정녕 윤 시인의 희생에 값하는 조국의 모습인가? 우리는 끝내 ‘영원히 슬퍼하는 자’에 머물고 말 것인가? 시인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니, 불꽃 같은 슬픔을 운명처럼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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