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이런 재판관을 보고 싶다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신호등] 이런 재판관을 보고 싶다

웹마스터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미국은 ‘법무부’를 ‘Department of Justice(DOJ)’ 라 하고, ‘법무부 장관’을 ‘U.S. Attorney General’ 이라 부른다. 연방정부의 일반 장관들은 ‘Secretary’ 라 부르지만, 유독 법무부 장관만은 ‘Attorney General’ 이라 한다.(국무장관: ‘Secretary of State’, 국방장관: ‘Secretary of Defense’ , 재무장관: ‘Secretary of Treasury’ 등)


법무장관을 ‘Attorney General’ 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직책이 법무부(DOJ) 조직보다 먼저 생겼기 때문이다.

‘Attorney General’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연방정부에서 의회와 대통령에게 법률 자문을 해주던 직책이었다. 19세기말 연방 법무부가 만들어 지면서 그 조직이 ‘Attorney General’ 산하로 귀속되었기

때문에 ‘Attorney General’은 법무부의 수장(장관)이 된 것이다.


‘Justice’는 우리 말로 ‘정의(正義)’ 를 뜻한다. ‘정의’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 가는 가치로서, 대부분의 법(法)이 포함하는 이념이다.” ‘Justice’ 라는 어원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를 담당하는 여신’ Justitia(유스티티아)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부분의 법정(Court) 건물 앞에는 저울과 검(劍)을 든 유스티티아 여신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법(法)이라는 한자(漢字)는 물(水)이 흘러가듯이(去) 막힘이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법이 통하지 않고 공평하지 못하면 불평과 불만이 쌓여 결국엔 불행하게 된다. 재판관은 사람들 간에 다툼이 있을 경우,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내리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는 뉴욕 브롱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소령으로 제대한 뒤 뉴욕의 치안판사가 됐다. 1920년대 어느 겨울 한 노인이 절도죄로 잡혀 왔다. 나흘을 굶은 손자를 위해 식료품 가게에서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온 것이다. 그 노인을 심문한 라과디아 판사는 그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 노인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리 없었다. 그러자 라과디아 판사는 다시 판결을 내렸다. “이 노인 가족이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게 된 데에는 이 도시에 함께 사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이 잘못에 대해 나 자신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모든 참석자들도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의 죄를 저질렀으므로 각기 5센트의 벌금을 선고합니다.” 그러고는 모자를 돌리니 누구도 군말 없이 벌금을 냈다. 이때 모인 돈은 총 57달러50센트였다. 라과디아 판사는 모인 돈에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를 그 노인에게 주면서 다시 배고프면 나를 찾아 오라고 했다. 그는 항상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서 정의 구현을 실천했던 재판관이었다.


라과디아 판사는 재직 시절, 이탈리아 출신 동족이라는 이유로 마피아의 회유와 협박을 많이 받았으나 결코 타협 없이 공정하게 범죄를 다스렸다. 인간미와 정의, 청렴, 강직함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23년 주의회에 진출해 1933년까지 하원의원을 역임했으며, 1934년부터 뉴욕 시장을 4년씩 3번 역임했다. 1953년 뉴욕시는 그의 업적을 기려 뉴욕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상을 세웠다.


2010년, 서울 서초동 소년 법정에서는 16세된 미성년 소녀의 재판이 있었다. 소녀는 친구들과 서울 도심에서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다 체포되었다. 이미 이 소녀는 14건의 절도 폭행을 저질러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도 있었기에 이번엔 ‘보호시설 감호위탁’ 같은 중형이 내려 질 상황이었다.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머리를 숙인 채 떨고 있는 피고인에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피고인은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판사는 “지금부터 나를 따라 힘차게 외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판사의 요구에 어리둥절한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세상에서~." 그러자 판사는 내 말을 크게 따라 외치라고 독려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 하던 소녀는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를 외칠 때, 그만 참고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법정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소녀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도, 법정 경위도, 방청석의 참관인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재판관은 다시 법정에 모인 참관인들을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법정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 소녀의 잘못한 잭임이 있다면 그것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세상에 나가서 긍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녀에게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립니다.”


눈시울이 붉어 진 재판관은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를 법대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러고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 하고 두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 막혀 있어서, 이 정도 밖에 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소녀의 재판을 감동적으로 종결했다.


사실 이 소녀는 2년 전만 해도 어려운 가정 형편 가운데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장차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여중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갓길에 남학생 여러명에게 끌려 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꿈 많은 소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폭행 사건 후, 이 소녀는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심각한 휴유증을 앓게 되었고, 딸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홀어머니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었다. 소녀는 학교를 겉돌기 시작했고,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재판관은 잘못에 대한 형벌을 내리기보다 희망을 상실한 소녀에게 용기와 자존감을 북돋아 주었다. 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지만, 서울가정법원내에서 화제가 되었고, 뒤늦게 세상에 알려 져 ‘명판결’의 사례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1945년, 전쟁에 패망한 일본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 가난과 식량부족으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는 패전의 일본을 통치하면서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일본은 ‘식량관리법’에 따라 밀가루, 쌀, 등 식료품을 배급제로 운용하고 있었다. 겨우 연명하기도 힘든 정도의 식량 배급량에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식량 암시장들은 독버섯처럼 생겨났다. 암시장 거래로 식량의 비정상적 유통이 가속화되자 일본 정부는 엄정한 유통 단속을 공포했지만, 암시장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북한의 ‘장마당: 암시장’이 확산되는 것도 정부의 식량 배급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良忠)’ 판사는 1946년부터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경제사범을 재판하는 법관이었다.

식량관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범죄자들이 넘쳐났고, 야마구치는 법과 양심에 따라 그들을 재판했다. 그 자신도 배급식량 외에는 결코 먹지 않았다. 타인에게 암시장 유통의 죄를 물어야 하는 자신이 배급량 이외의 식량을 먹는다는 것은 양심과 법에 어긋나는 짓이며, 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이유였다. 1947년 야마구치 판사는 34세의 이른 나이에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위선과 타협에 굴하지 않은 재판관으로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청렴결백한 그의 정신은 일본 사회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야마구치 판사의 아사(餓死) 사건은 지금도 일본 사법부의 신뢰를 지탱하는 교훈으로

회자되고 있다.


예로부터 재판관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는 자리이다. 판사는 평생 재판을 하면서 대부분 머리로 판결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슴으로 판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범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때로는 그 범죄가 온전히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생겨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잘못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이르기까지의 원인, 과정, 결과를 마치 비디오 판독을 하듯이 살피고, 우리 사회의 냉대, 무관심, 환경까지 살펴보는 지혜를 가진 판사들을 보고 싶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