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출신의 감리교 독립 유공자 발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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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출신의 감리교 독립 유공자 발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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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두 선생(기사 속 사진)의 상업활성화 지도 및 금융담보 제안 등 국민경제활성화 활동을 다룬 1935년 1월 30일 동아일보 기사(네이버 옛날 신문 캡처)


조선일보 함흥 지국장, 민족계몽운동가 권병두 선생

아들 권성주 고문의 노력으로 사료 발굴, 국가보훈부 상신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함경도를 중심으로 감리교회의 전도 역사를 담은 중요한 사료인 애산 김진호 목사(1873~1960) ‘북선전도약사(北鮮傳導略史)’가 출간된 가운데 주로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만주독립운동가들을 취재하는 활약한 감리교 청년운동가 권병두(權炳斗) 선생의 사료가 최근 발굴되어 화제다. 권병두 선생은 1896 함경남도 함흥시 운흥리에서 태어나 조선일보 함남 함흥 지국장으로 일하면서 개신교 청년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같은 사실은 아들인 민주평통 LA협의회 권성주 고문과 한미동맹강화 재단총재 김회창 박사의 노력, 그리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아카이브 기록을 토대로 만든 자료들을 근거로 발굴해 성과다. 현재 독립유공자상신을 대한민국 정부에 예정으로 서류작업을 마치고 국가보훈부에 신청이 들어간 상태다.

권병두 선생은 함경도 일대에서 강연을 통해 민족계몽운동을 펼쳐나갔다. 1923 동인구락부 강연회를 통해 독립심 강조 연설 도중 경관에게 경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25년에는 청년대강연회를 통해 현대예술과 독립심 교육이라는 제하의 강연을 하려고 했으나 경관의 제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후 1928년부터는 원산점원회 집행위원회 조직 선전부 상무로 활동하면서 함흥지역을 돌며 상업, 무역, 교육, 질병 예방, 독립심 고취 등의 강연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공로로 인하여 조선일보 함경남도 함흥 지국장으로 발령 받았다. 조선일보 지국장 시절에는 애국 애족 봉사를 강조하고 간도 기행단을 인솔하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취재하여 관북일대답파기’(만주독립운동가 인터뷰) 기고하기도 했다. 경찰에 구속 되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권병두 선생은 특별히 국민체육활동 대한 지론을 갖고 함흥체육회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권병두 선생의 가장 업적은 함흥상업활성화 것이다. 양과 주조 허가를 받을 있도록 노력하여 성사 시켰고 대중들로 하여금 상업활성화를 지도 하고 금융담보제도를 제안하는 조선인들이 경제적 자립에 힘쓰게 했다. 이에 대한 결실이 북선상업은행이었던 것이다. 함흥 지역에서 가장 서점을 운영하기도 그의 노력은 그러나 해방 이후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반공단을 결성하고 활동하자 탄압이 이어졌고 1.4 후퇴 월남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권성주 고문은 사실 1.4 후퇴 우리 가족들이 반공인사였고 형님이 살해 당한 상황에서 미군들과 국군들이 ‘3일만 피해 있으라 하여 흥남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배에 승선, 거제도에 옮겨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한 한이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자료를 가진 게 없어 독립유공자 상신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자료들을 무더기로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말했다.

한편 한국 감리교는 물론 미주안힌사회의 개신교계는 이번 사료 발굴과 상신으로 새로운 기독 독립운동가 발굴해 재조명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훈구 기자 la@chosun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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